서울대 뇌과학 최고 전문가 梨大 파격 이직

국내 뇌과학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서울대 의대 교수가 이화여대 약대 교수로 이직하기로 해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정신과 류인균(48) 교수는 최근 이화여대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고 이 대학 약대의 석좌 교수이자 뇌연구소 소장으로 옮기기로 결정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이화여대는 류 교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연구교수 두 명 채용 권한, 30억원대 MRI 장비 구입, 2억원에 육박하는 연봉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교수의 연봉은 이화여대 전체에서 최고일 뿐 아니라 국내 전체 교수를 통틀어서도 최고 수준이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류 교수는 하버드 의대에서 전임강사를 지내고, 1996년부터 서울대 강단에 서 왔다. 자폐증 치료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뇌와 관련된 질환을 두루 연구, 미국 정신의학회지를 비롯한 세계적인 학술지에 수십 편의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류 교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137만달러(약 15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았고, 미국 정신건강연구연합(NARSAD)이 수여하는 '중견연구자상', NIH가 시상하는 '국제 저명과학자상(Distinguished International Scientist Award)' 등 세계적 권위의 상들을 받았다. 작년 서울대 의대 동창회 제정 함춘의학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 1000만원을 탈북 청소년이 다니는 여명학교에 기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우울증 치료에도 성과를 냈다. 보디빌더들이 애용하는 기능성 식품 크레아틴이 우울증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동료 연구진과 함께 밝혀내고 미국 정신의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했다.

의사이자 연구자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류 교수가 돌연 이화여대 약대로 이직하기로 한 이유는 '현 상황에선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류 교수는 강의와 환자를 돌보는 업무 중간 중간 짬을 내 연구를 해왔다. 류 교수가 하루 종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때는 공휴일뿐이었다. 심지어 체력 관리도 책과 논문으로 가득 찬 사무실에 운동기구를 갖다 놓고 했다.

이러다 보니 류 교수는 서울대 의대 교수와 서울대병원 의사로 두 업무를 병행하는 방식으로는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 성과를 내기에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다고 한다.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이화여대가 진료 부담을 없애주면서 수십억원대의 파격적 연구지원과 뇌 연구소 설립을 약속하며 스카우트를 제의하자 선뜻 응했다는 것이다. 류 교수는 "병원에서 쌓은 정신과 임상경험과 약대의 약리 기전을 결합해 뇌질환 치료 신약 개발에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류 교수 이직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대는 비상이 걸렸다. 오연천 서울대 총장은 즉각 류 교수를 개인 면담해 만류하고 나섰다. 하지만 류 교수는 40대 후반인 자신에게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10여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오 총장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