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공세에 美시장 비상… 정몽구 회장 긴급 訪美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시장 긴급 점검에 나선다. 정 회장은 20일 오후 전용기 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나 로스앤젤레스(LA)로 향했다. 현대차 미국 판매 법인에서 업무 보고를 받고 판매 전략을 점검한 후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차 조지아 공장도 연이어 방문해 생산 차량 품질을 확인한다. 현지 대리점 등 판매상들과도 만나 현장 목소리도 듣고 24일 귀국할 예정이다. 사실상 미국 전역을 나흘 만에 돌아보는 강행군 일정이다.

방미 계획은 지난 주말 확정됐고, 일정도 속전속결로 잡혔다. 미국 시장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성적이 올해에도 나쁜 건 아니지만 글로벌 경제 위기 여파가 심상치 않은 데다 도요타·혼다 등 일본차 업체들이 대대적인 물량 공세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어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7월까지 미국 시장에서 75만5000여대를 판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판매 대수가 12.3% 늘었지만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9.1%보다 약간 줄어든 9% 선에 그쳤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일본차들은 본격적인 물량 공세를 퍼부으며 약진하고 있다. 지난해 마이너스 7%대 성장률로 추락했던 도요타는 올해 7월까지 28.3% 성장했고 혼다와 닛산도 각각 18.9%, 14.7% 판매 대수가 늘었다.

현대차는 "미국 현지 공장을 100% 이상 가동하고 있다"며 "무리해서 점유율을 늘리기보다는 '제값 받기'를 통해 수익성 위주로 내실을 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현지 현대·기아차 판매상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는 일본차 업체 대응책을 마련해 달라"고 본사에 요구하는 등 시장에 적극 대응을 해야 할 요인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차 한 대를 팔 때 제공하는 평균 인센티브는 2173달러(약 247만원)에 달했지만 현대차(964달러, 약 109만원), 기아차(1347달러, 약 153만원)는 이에 훨씬 못 미쳤다. 도요타는 물론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인 BMW나 아우디보다 낮은 수준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제값 받기'에도 나서 지난 6월 현대차가 신형 그랜저HG를 미국 시장에 내놓으면서 기존 차량보다 최대 25.5% 높은 3만2000~3만6000달러로 가격을 정했다. 특히 제네시스와 에쿠스 등 수익성 좋은 대형차 판매가 올 들어 작년보다 31.1% 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20일 "정 회장은 이번 미국 방문에서 일본차 업체 등의 물량 공세나 할인 공세에 끌려가지 않고 '제값 받기'를 통한 브랜드 가치 높이기에 주력하되 선제적인 마케팅 전략 수립 등을 통해 경제 위기 상황을 돌파하라는 지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품질 점검에도 주력해 지난달부터 기아차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신형 싼타페의 초기 품질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방미 목적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 9월과 지난 3월 세계 경제 위기의 진원지인 유럽을 방문해 판매 법인과 생산 법인의 현안을 점검하며 위기 대응책을 논의했고, 지난 6월에는 기아차 중국 3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후 산둥성에 있는 현대파워텍과 현대위아 중국 공장을 방문하는 등 현장 경영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 방문까지 마치면 올해 해외 3대 시장 현장 경영을 완성하는 셈이다.

이날 공항에는 정의선 부회장, 정성이 이노션 고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 등 자녀들과 설영흥 부회장 등이 배웅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