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작가들, 국제 펜(PEN) 가입 부러워할걸요"

"북한 체제하에서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는 한 명도 없습니다. 회원들에게 제가 말했어요. 우리가 '망명 북한 펜(PEN) 본부'를 창설하고 국제 펜에 가입한 걸 알게 되면 북의 작가들이 우리를 얼마나 부러워하겠느냐고. 그러니까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오는 9월 9일부터 15일까지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제78차 국제 펜(PEN) 대회의 가장 큰 이슈는 망명 북한 펜 본부 탄생과 가입(본지 2월20일자 A6면)이다. 망명 북한 펜 본부의 이사장은 조선중앙TV에서 방송작가로 일하다 1996년 탈북한 장해성(67)씨. 장 이사장은 2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마디로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114개국 143개 본부가 가입한 국제 펜의 주목적은 인권 확대와 표현의 자유 신장. 한국 펜 본부(이사장 이길원)가 지원하고 있는 '망명 북한 펜 본부'는 장 이사장 등 20여명의 탈북 문인이 주축이다. 망명 북한 펜 본부 가입이 성사되면 이번 펜 대회는 북한 출신 문인들이 세계 문인들과 함께 북한 내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장 이사장에게 북한 표현의 자유가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그는 바로 4·15 문학창작단의 현승걸 단장 사례를 꺼냈다. 4·15 문학창작단은 김일성·김정일과 그 가계(家系) 관련 작품만을 전문적으로 창작해 내는 북한의 문학단체.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북한에서 글로는 최고의 엘리트들만 뽑히고, 그 단장이라면 당연히 최고의 권력이다. 그런데 1992년 당시 창작단을 이끌던 현승걸 단장이 사석에서 푸념조로 "우리는 언제쯤 쓰고 싶은 걸 쓰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 단장의 발언은 바로 고발됐고, 그는 요덕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리고 이듬해 수용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 이사장이 언급한 또 하나의 사례는 시인 도명학씨. 이번 망명 북한 펜 본부의 회원 중 한 명이다. 탈북 이전 북에 있을 당시 도 시인이 습작 삼아 쓴 작품 중 '곱사등이 나라'라는 시편이 있었다고 한다. 인민들이 너무 많은 짐을 져 모두 곱사등이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습작으로 혼자 간직하고 있던 이 시가 보위부 정보원들의 감찰에 적발됐고, 도 시인 역시 수용돼 3년 동안 죽을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장 이사장은 북한의 모든 창작은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따른다고 했다. 한마디로 글을 쓰건 강연을 하건 토론을 하건 김일성의 교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헌법이 최고법이지만, 북에서는 10대 원칙이 곧 헌법"이라며 "이런 나라에서 무슨 표현의 자유가 있고 언론의 자유가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장 이사장은 북한 작가 출신으로는 가장 먼저 한국에 왔다. 이사장으로 추대된 데는 그런 사연도 한몫했다. 모두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번 망명 북한 펜 본부에는 1970년대 김일성으로부터 희곡 관련 특등상을 받았던 이진명, 런던올림픽 직전 열린 영국 시인올림픽에 북한 시인 자격으로 참석한 장진성 등이 함께한다.

장 이사장은 본부의 역할로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우선 북의 현실에 대해 보태지도 덜지도 말고 문학 작품을 통해 보여주겠다는 것. 또 하나는 어렵지만 북한 내부와 연대해 북 체제 비판과 인권 신장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한국 펜 본부는 서울 외신기자클럽에서 간담회를 갖고 '문학, 미디어 그리고 인권'을 주제로 하는 올해 국제 펜 대회의 구체적 프로그램을 밝혔다. 국제 펜 대회 사상 처음으로 월레 소잉카(나이지리아·1986년), 오르한 파무크(터키·2006년), 르 클레지오(프랑스·2008년) 등 3명의 노벨문학상 작가가 한자리에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