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진의 길 위에서] 쉰네 살 중화권 파워블로거, 한국 땅에 '취한' 사연

그는 주말이면 사진기 메고 길을 나선다. 지난 토요일에도 경북 영주로 내달렸다. 영주에만 네 번째 하는 걸음이다. 부석사와 소수서원은 진작에 가봤다. 그래서 이날 일정은 풍기 인삼시장, 소백산 희방폭포와 희방사, 죽령 옛길 왕복 5㎞ 걷기로 잡았다. 그는 주한 타이베이대표부 부산 사무처 로티엔홍(羅添宏) 처장이다. 쉽게 말해 부산 주재 대만 총영사다.

로 총영사를 영주에서 만나 함께 소백산 골짜기를 걸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땀범벅이어도 그는 짙푸른 계곡 숲길을 내내 즐겼다.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희방폭포는 '영남 제일 폭포'답게 30m 물기둥을 요란하고 시원하게 내리꽂았다. 그는 "한국의 자연은 컬러풀하다"고 했다. 사계절이 있고 산과 강과 섬이 다채롭다고 했다.

가파른 비탈을 올라 희방사에 다다르자 그는 또 감탄했다. "한국엔 천년 넘지 않은 절이 드물다." 그는 "절들이 하나같이 경치가 빼어나고 문화재도 많다"고 했다. 그가 지난 5년 찾아다닌 사찰이 100개를 넘는다.

그에게 영주는 낙동강 유역이라는 의미가 크다. 그가 태백 황지연못부터 봉화·영주 거쳐 부산 다대포까지 지명 스물댓 개를 줄줄이 읊었다. "예천 문경 안동 상주 의성 구미 칠곡 달성…." 칠백리 낙동강이 흘러가는 시· 군들이다. 그는 꼬박 두 해에 걸쳐 낙동강을 답사했다. 건성이 아니라 그곳 명소들을 훤히 뀄다.

그는 안동 도산서원 얘기를 하면서 천원 지폐에 찍힌 서원 그림을 꺼내 보였다. 상주 경천대는 TV 드라마 '상도'를 찍은 곳이라 했다. 달성 도동서원은 그의 이름 자 '宏'을 쓰는 성리학자 김굉필(金宏弼)을 모셔 반가웠다. 고령 개경포가 강화도에서 뱃길로 실어 온 팔만대장경을 낙동강 거슬러 올라 부렸던 나루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낙동강에 관한 모든 것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韓國也可以這樣玩(한국 이렇게도 즐길 수 있다·tw.myblog.yahoo.com/lovesong-tansui )'이라는 한문 블로그다. 거기에 '낙동강'을 비롯한 여행기 336건을 쓰고 사진 1만1000장을 찍어 실었다. 북쪽으로 화진포, 서쪽으로 홍도까지 방방곡곡 빠진 곳이 없다.

그는 "한국은 역사와 문화도 컬러풀하다"고 했다. 그 말처럼 모든 글에 그곳 역사와 풍물을 담았다. 지도와 교통·음식 정보도 곁들였다. 끄트머리엔 그곳을 노래한 가요의 가사를 올리고 노래를 들을 수 있게 했다. 낙동강은 '처녀 뱃사공', 화진포는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설악산은 '한계령' 식이다. 그는 부산 용두산공원 글엔 '용두산 에레지'를 띄워뒀다며 "용두산아 용두산아 너만은 변치 말자"며 첫 소절을 불렀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울릉도 트위스트'라며 멜로디를 "따다다다 따다다다~" 하고 신나게 흥얼거렸다.

그는 중화권 사람들에게 인기 높은 '파워 블로거'다. 블로그 방문 횟수가 37만을 넘었다. 접속자를 대충 헤아려보니 대만 40%, 홍콩 30%, 한국 20%, 미국 7%쯤이더라고 했다. 블로그에 들어오는 한국 여행 문의에 저녁마다 답글을 다는 게 중요한 일과다. 4월 벚꽃 철과 10월 단풍 철을 앞두고는 질문이 밀려들어 정신을 못 차린다. 그는 2009년 한국관광공사가 뽑는 파워 블로거에 오르기도 했다.

로 총영사는 2007년 7월 부산에 부임했다. 몇 달 살아보니 부산은 '매혹적인 월드 클래스 도시'였다. 그 감상을 한시(漢詩) '부산'으로 썼다. '산천은 수려하고/ 기후는 온화하여/ 풍요로운 대한민국'으로 시작해 '부산, 잊지 못할 도시/ 부산, 오색찬란한 도시/ 부산, 진정한 세계수준의 도시'로 끝난다. 그는 2008년 정초 부산과 한국을 탐구하고 알리는 블로그를 열고 이 시를 첫 글로 올렸다.

그는 3년 임기가 끝나가자 드물게 임기 연장을 신청했다. 한국의 자연과 부산 친구들을 떠나기 싫었다. 그는 작년에 어윤태 영도구청장을 만나 인사를 건넸다. "신미양요 때 전사한 어재연 장군의 어(魚)씨이시군요." 어 장군 후손인 어 청장은 놀라자빠졌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이런 그에게 마음 통하는 부산 친구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는 시청· 구청 초청을 받아 부산 시민에게 '부산'을 강연하러 다닌다. 용두산 부산타워에서 사진전도 열었다.

그는 임기를 더 늘릴 수 없어 연말쯤 귀국한다. 그래도 블로그는 계속하겠다고 했다. 여행기 쉰 개는 올릴 쓸거리가 쌓여 있다. 그는 한국에 관한 책도 차근차근 써볼 생각이다. 첫 책은 '명찰(名刹)과 명산', 다음 책은 '작은 섬들'로 점찍어뒀다. 로티엔홍 총영사는 "대한민국에 매우 좋고 아름다운 곳이 많다는 걸 중화권에 끊임없이 알리겠다"고 했다. 이 쉰네 살 대만 외교관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보며 우리는우리 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