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고양원더스의 패자부활전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영화 '19번째 남자'(1988년)는 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무명 선수들 이야기다. 코스트너는 메이저리그에서 21일만 뛰고는 마이너리그에서 12년을 보낸 노장 포수다. 150㎞ 강속구를 던지지만 제구(制球)가 엉망인 신인 투수를 훈련시키는 일도 맡는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신인 투수를 잘 다듬어 메이저리그로 올려 보낸다. 정작 그는 메이저리그로 돌아가지 못한 채 마이너리그에서도 쓸쓸하게 방출된다.

▶미국에 마이너리그가 있다면 한국엔 프로야구 2군 팀끼리 벌이는 퓨처스리그가 있다. 프로팀은 아니지만 경찰청과 상무 야구단도 속해 있다. 군대에 가야 하는 프로야구 선수들 중에서 테스트를 거쳐 구성한 팀이다. 퓨처스리그에 속하지 않으면서 프로 2군팀들과 비공식 경기를 치르는 야구단이 딱 하나 있다. 지난해 경기도 고양시를 연고지로 창단한 고양원더스다. 원더스는 2군팀과 교류 경기를 가져 지금까지 18승 5무 18패를 기록했다.

▶고양원더스는 전자상거래업체 위메이크프라이스의 허민 대표가 구단주를 맡아 출범했다. 프로 구단에 들어가지 못한 선수나 프로팀에서 방출된 선수들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기 위해 탄생했다. '야신(野神)'으로 불리는 김성근 전 SK와이번스 감독이 고양원더스를 이끌고 있다. 김 감독은 팀을 맡으면서 "갈 곳 없는 선수들에게 새 희망을 주고 싶었다. 후배들을 위한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선수 40여명을 데리고 일본 전지훈련을 떠나 날마다 오전 6시부터 12시간 동안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김 감독은 "피칭 머신이 고장 나는지 우리가 먼저 쓰러지는지 한번 해보자"며 다그쳤다. 선수들은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느라 평균 10㎏씩 살이 빠졌다. 훈련이 너무 힘들어 두 명이 포기하고 떠났다. 담금질을 거친 고양원더스 선수 중에 세 명이 프로야구 입단의 꿈을 이뤘다. 지난 7월 투수 이희성이 LG에 들어간 데 이어 엊그제 김영관·강하승이 각각 LG와 기아 유니폼을 입게 됐다. 아마추어로 활약하다 부상을 당해 프로팀 지명을 받지 못했거나 프로팀에서 방출됐던 선수들이다.

▶김성근 감독은 "축구는 1 대 0만 돼도 역전시키기 어렵지만 야구는 다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며 선수들을 격려해 왔다. 축구와 달리 야구 국가대항전 월드클래식 베이스볼은 패자부활전을 두고 있다. 2009년 한국에 졌던 일본이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나 우승까지 했다. 야구의 묘미는 막판 뒤집기에 있다. 스스로 '루저(loser)'라고 자조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고양원더스가 패자부활전에 나서는 청춘의 깃발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