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8.29 09:32

HEALING TOWN

외국에 특별한 호텔이 생기면 가끔 부러움을 느낀다. 지역의 특성을 최대한 만끽할 수 있도록 배려한 숙소는 여행자의 큰 즐거움이다. 그런데 얼마 후면 국내에도 그런 곳이 생긴다. 한옥에서 한의학 치료를 받으며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곳, 동의본가다. 9월 10일 베타오픈을 앞두고 미리 다녀왔다.

‘웰빙을 넘어 힐링 시대가 온다.’ 요즘 많이 들리는 말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데 힘을 쏟는 힐링. 무조건 앞으로만 내모는 것에 정지 신호를 보내고 방치해두었던 문제들을 찾아내 치료하는 것이 힐링의 핵심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더 심하게는 답답하긴 하지만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기도 한다. 너무 오랫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사람들이 그렇다. 여행은 이런 이들에게 필요하다. 시동을 끄고 완전히 새로운 정비가 필요할 때, 목적지를 모르겠다면 산청으로 가보시길.

자연과 한의학으로 여행자를 치유하는 곳

물과 산, 사람이 맑아 ‘삼청’이라고도 불리는 경남 산청은 예부터 건강한 고장으로 통했다. 지리산 곳곳에서 잡초를 이겨낸 귀한 약초들이 자라나 약선식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내년에는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기념해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열린다. 이 행사를 위해 2010년 완공된 동의보감촌은 지리산 천왕봉, 대원사 계곡 등과 함께 산청의 9경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한의학을 테마로 한 건강체험 관광지라고 하는데 소소한 볼거리와 함께 맑은 자연을 만날 수 있어 가족 여행지로 추천할 만하다.

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면 호젓하게 자리한 동의본가를 만날 수 있다. 동의본가는 단순한 체험관이 아닌, 1박 2일 동안 완벽한 치유를 실현시키기 위해 탄생한 힐링 호텔이다. 한옥과 한의학을 접목시킨 동의본가는 지난 6월 TV조선에서 방영한 시트콤 <웰컴 투 힐링타운>의 무대가 된 곳으로 유명세를 탔다.

드디어 동의본가에 입장. 주위 경관과 건물 외관이 무척 아름다워 입장과 동시에 도심의 때가 한 꺼풀 벗겨지는 듯했다. 촬영 내내 풀벌레와 계곡 물소리로 귀가 먼저 호강했다. 10여 동의 한옥으로 구성된 동의본가는 100% 예약제로 운영된다. 상주하는 한의사가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을 체크하기 때문에 하루에 10명만 받는다. 예약을 하면 한의사가 전화로 간단한 예진을 하고 방문자에 맞는 프로그램을 미리 짜둔다. 투숙객은 1박 2일 동안 ‘힐링 디톡스 프로그램’을 체험한다. 객실 내에는 TV도, 에어컨도 없으므로 오로지 자연에 몸을 맡기는 것이 자유시간 동안의 할 일이다. 동의본가에서의 하루는 다음과 같다. 오후 2시 입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나서 저녁 6시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진행된다. 1시간 반의 해독 치료를 시작으로 약선식으로 제공되는 저녁 식사 후 9시에 스파 치료, 10시에 풍욕 치료, 10시 반에 칠흑치료까지 받으면 하루의 일정이 끝난다. 다음 날 아침에는 7시에 산소치유, 7시 반에 수치료, 아침 식사 후 10시 반에 개별치료가 진행된다. 오전 11시 퇴실할 때까지 디톡스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객실에 제공되는 화장품 역시 한약재로 직접 만든 것이다. 먹어도 될 정도로 안전한 화장품이라고 대표가 한껏 자랑한다. 이곳의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화장품을 만든 이는 ‘피부 살림법’으로 유명한 한의사 김효진 씨다. 대표는 오래 전부터 한방으로 디톡스를 연구해 온 김효진 한의사의 치료법에 반해 이곳으로 초대했다고 한다. 필봉산 자락이 폭 안겨 있는 듯한 이곳에서 한방으로 만든 집중 케어를 받는 기분은 어떨까. 융숭한 접대를 하고 싶은 외국 친구가 있는데, 동의본가에 데려가면 대단한 자랑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청의 보물들로 만든 특별한 밥상

동의본가에서 주변 경관 다음으로 반한 것은 음식이다. ‘대개 건강식은 오래 음미해야 조심스레 맛의 문을 열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음식들은 첫 맛부터 입에 착 감겨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각 음식의 요리 과정을 들어보면 더 기분 좋다. 빛깔도 맛깔도 훌륭한 오색 하이야미 약밥은 유기농 쌀에 홍화꽃, 백련초, 복분자, 인삼, 당귀, 황기 등을 넣고 지은 것이다. 쌀을 씻은 다음 당귀, 황기를 우린 물로 밥을 짓고 뜨거울 때 쑥가루, 백련초, 복분자물로 삼색을 들인다고 하는데 여간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정찬에 제공되는 두충흑돈갈비찜도 매력적이다. 산청에서 생산되는 흑돼지를 한약재에 숙성시킨 이 음식은 고기 요리 평가에 무척 인색한 사람도 후한 점수를 매길 만큼 풍미가 뛰어나다. 돼지고기의 찬 성질을 보완하기 위해 뜨거운 성질을 가진 두충껍질을 이용했으며, 두충나무가 가지고 있는 약성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 12시간 이상 우려낸다고 한다. 그 덕분에 설탕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감칠맛이 난다.

쌀국수도 별미다. 3시간 정도 우려낸 닭육수에 해물육수를 혼합하고 죽염, 통계피, 건고추를 넣어 한소끔 끓이면 시원한 국물이 탄생한다. 여기에 장국 소스를 얹으면 동의본가표 쌀국수가 완성된다. 조미료 덩어리인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쌀국수와 비교하지 마시길. 마지막으로, 동의본가의 자랑인 밑반찬도 빼놓을 수 없다. 당귀, 방풍, 곰취, 매실, 오이, 청량초 등 산청에서 나는 약초와 재료를 이용해 담은 장아찌들은 마더 네이처 푸드의 정점을 찍는다. 이 음식만으로도 힐링은 충분히 이루어지는 듯하다. 문의 055-973-9565(동의본가 힐링타운), 055-973-9566((주)산청문화재단)

interview | 박성미 동의본가 대표

의외였다. 생활한복을 입은 종갓집 맏며느리 같은 이미지를 상상했는데 올 블랙 차림에 짧은 머리를 한 박 대표가 자신을 소개한다. 화통한 목소리로 첫 대면부터 다양한 에피소드를 쏟아내는 것으로 보아 전직 제작자나 연출가인 듯했고 예상은 여지없이 맞았다. 박 대표는 1990년대 초부터 20여 년간 숱한 다큐멘터리와 기획물을 제작한 방송인이자 현재 폴라리스TV의 편성 책임자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산청에 내려와 동의본가를 연 것은 한의학의 우수성과 힐링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다. 장소가 산청인 이유는 간단하다. 산청은 그녀가 태어난 고향이자 한의학의 미래를 책임질 역량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곳이기 때문. 무엇보다 산청군이 2년여 전 한의학 엑스포를 유치하고자 노력할 때 자문단의 일원으로 참여해 도움을 준 것이 결정적인 인연이 됐다.

“명분이 좋더라고요. 지리산 약초 유명하지, 한의학 박물관도 있지, 이걸 살리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 싶었어요. 저도 그때 산청의 매력을 많이 알게 됐죠.” 이후 그녀는 산청문화재단을 설립하고 보다 적극적인 활동에 나섰다. 동의보감촌의 한옥 단지를 빌려 한의학 힐링 호텔로 리모델링했다.

청정 자연 속에 머물며 스스로 힐링을 경험한 것이 동의본가를 연 가장 큰 계기다. “20년 넘게 방송 일을 하면서 몸 정말 많이 망쳤죠. 하루 20시간씩 일하고 스트레스 심하게 받고 식사도 대충 하고…. 그런데 여기 와 있으니 세상 근심이 없어져요. 몸을 보하는 좋은 음식 먹고 계곡 물소리 듣고 하늘에 구름 흘러가는 거 보고 나무 냄새 맡으며 잠들죠. 이런 자연 속에서 한의사가 몸 상태 봐주고 치료도 해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게 고안해낸 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한의학 호텔입니다.”

박 대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1년 반 동안 한의학에 대해 공부했단다. 그녀가 쏟아내는 지식은 전문가 수준이었다. “한방은 근본을 다룹니다. 몸 전체를 생각하며 치료하죠. 그런데 치료가 좀 느리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사람들이 깊게 신뢰하지 않아요. 이건 잘못된 편견이에요. 한의학에도 단 하루 만에 치료가 가능한 기법들이 있어요. 저희 호텔에서는 그걸 보여줄 겁니다. 1박 2일 만에 뭐가 바뀌냐고요? 힐링 디톡스 프로그램을 체험해보시면 알게 됩니다.”

그녀는 한의학을 발전시킬 여러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지리산 약초에 대한 정보를 집대성하고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릴 영상을 제작할 것이다. “둘러보니 제 주위에도 다 몸 버리면서 일하는 사람들뿐이더라고요. 다들 너무 치열하게 세상과 싸우며 살아요. 그래서 나 자신과 그들을 힐링해주며 살 겁니다. 힐링 산업은 인생을 걸만한 가치 있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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