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인생의 바캉스가 아니다

  • 글·정지현 시니어조선 편집장
  • 사진·이경호(C.영상미디어)

입력 : 2012.08.29 09:32

SPECIALIST |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우재룡 상무

은퇴하고 나면 여행 다니고, 악기도 배우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해보겠노라며 핑크빛 꿈을 꾸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노년기는 열심히 살아온 젊은 시절에 대한 보상의 시기인 것일까? 각 단계별로 인생은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법. 연말 보너스를 받은 것 같은 착각에서 벗어나 그 시기에 맞는 삶의 계획이 필요하다.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은퇴하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온통 은퇴 관련 기사가 넘쳐난다. 노후 준비가 안 된 이들이 많다며 잔뜩 겁을 주기도 하고, 새로운 인생의 시작 운운하며 치열한 사회적 경쟁 속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동안 미뤄왔던 꿈을 이뤄볼 수 있는 호시절이라고 잔뜩 기대감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방송이나 언론에 서 말하는 것은 하나같다. 노년에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재정적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건강해야 한다는 것.

좋다, 60대에도 40대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매달 꼬박꼬박 일정 액의 연금이 입금된다 치자. 그렇다면 그다음은? TV에 소개되는 맛집 찾아다니고,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헬스클럽에 가는 것으로 소일하며 지낼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노후를 위해 보험이나 저축에 많이 의존합니다. 재정적 준비가 곧 은퇴 이후 삶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여기에 건강관리만 잘한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재무와 건강은 노후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진정한 노후 설계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목표와 방향이 설정되면 이에 필요한 자금은 얼마이고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우재룡 소장의 말이다.

우리나라의 고령 인구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나이 듦에 따라 급격하게 늘어날 전망이다. 2050년이면 인구의 41%가 노인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은퇴 이후의 생활에 대한 의식과 준비 수준이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반면, 우리보다 고령화 사회를 50년 앞서 맞은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시니어 세대를 위한 정책, 연금제도, 일자리, 여가, 서비스 산업이 발달해 있다. 그렇지만 우리와 그들이 고유 문화와 삶의 방식이 다른 만큼 제도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는 선진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형 은퇴 모형을 정립하고자 지난해 2월 설립했다.

“한국형 은퇴 모형이 가야할 방향이라면 무엇보다 행복하고 따뜻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존 은퇴 설계에 관한 것은 주로 돈, 치료, 용품 등 물질 정보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정서적인 면보다는 노후한 신체를 보강하기 위한 수단만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 약을 먹지 않으면, 이 보험 서비스에 가입 안하면 하는 식으로 은근히 위협적으로 무엇이든 구매할 것을 자극하는 것이죠. 이보다는 장년층에 접어들어 가족 해체를 겪거나 커뮤니티에 속하지 못하고 외롭게 지내지 않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경제개발 시기를 거친 중·장년층들은 가정 경제, 사회적 성공이라는 목표 아래 삶의 많은 부분을 업무로 채워왔다. 그러다 보니 ‘일만 하고 놀 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목표를 달성하고, 자아성취에는 탁월하지만 관계를 맺는 데에는 서툴러서 이웃은 물론 심지어 가족과도 잘 소통하지 못하는 것.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점차 사회에서 고립되어 외로운 여생을 맞게 된다. 은퇴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열심히 일한 젊은 시절에 대한 보상을 받는 시기가 아니라 또 다른 삶을 멋지게 일구어 갈 수 있어야 한다. 은퇴 이전에 이후의 삶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미리 준비한다면 내 생애 최고의 시기를 보낼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 우재룡 소장이 추천하는 노후 설계를 위한 필독서

품위 있는 죽음의 조건

아름다운 마무리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흔히 죽음을 논하는 것을 터부시하지만, 웰다잉(well-dying) 할 수 있는 사람이 웰빙(wellbeing)할 수 있다. 은퇴 준비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끔 하는 책이다. 아이라 바이오크 저, 물푸레









은퇴의 기술

은퇴 관련 서적 중에는 지나치게 감성적이거나 ‘~해야 한다’는 식의 선언서에 가까운 경우가 흔하다. 반면 이 책은 질문에 답하고 쓰고, 체크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유형을 알아내고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수시로 체크하게 한다. 일종의 학습서로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스스로 찾도록 하는 셀프가이드 역할을 한다. 데이비드 보차드 저, 황소걸음











인생의 재발견

사랑했던 사람을 어떻게 애도할 것인지, 노화로 인한 수치심과 질투심을 조절하는 법, 부모·부부·자녀·형제자매 간 인간관계 등에 대해 상세하게 조언한다. 제대로 나이 들기 위해서 왜 공부가 필요한지 깨닫고 실천하게 하는 책이다. 가볍게 쓴 책이지만 저자가 노인 심리를 상담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 많다. 하르트무트 라데볼트·힐데가르트 라데볼트 저,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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