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아시아프] 회화 부문에서 첫 대상 탄생… 제주 아가씨의 '불편함' 통했다

"그림은 내성적인 제가 세상에 말을 거는 유일한 표현 수단입니다. 그 '그림'으로 큰 상을 받게 되다니 제 자신이 문득 자랑스러워집니다."

'2012 아시아프 프라이즈' 대상 수상자인 정혜윤(22·제주대 미술학부 서양화전공)씨는 '아시아프 프라이즈'가 '대상' 시상을 따로 하기 시작한 2010년 이래 첫 회화 부문 수상자다. 2010년, 2011년 모두 대상은 미디어아트 부문 출품자가 수상했다.

정씨는 이번 아시아프에 가로 145.5㎝, 세로 112.1㎝짜리 유화 두 점을 내놓았다. 두 점 다 제목은 '동심(童心)'. 부드럽고 화사한 색채, 표현주의적인 터치로 영악하고 약삭빠른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 '아이들은 순진하다'는 편견을 깨뜨린 그림이다. "작년 가을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장래희망 설문조사에서 1위가 '공무원'인 걸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화가, 아나운서, 선생님 등 꿈이 많았는데….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점점 아이들이 어른처럼 현실적으로 변해가는 거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순수하게 태어나 속되게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표현해 보려 했다."

따뜻한 색감, '어린이'라는 소재 때문에 언뜻 보면 밝고 천진난만한 내용일 것 같지만, 사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탐욕과 악(惡)을 포착했다는 '반격'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현대사회의 부조리가 어린이의 모습에서도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각화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회화의 즐거움인 붓질과 색채가 살아 있다"고 평했다.

정씨는 제주에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를 다니는 '제주 처녀'. 그는 "제주의 여름 바다, 산들의 아름다운 빛깔이 내 그림의 영감이자 원천"이라며 "앞으로 육지로 옮겨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내 고향 제주가 가장 마음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정혜윤씨에게 이번 아시아프는 첫 참여. 그는 "학교 밖 사람들에게 내 그림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내 그림을 어떻게 평가할까' 궁금해 참여를 결심했다. 공모에 선정된 것만 해도 기쁜데, 대상까지 받게 돼 얼떨떨하다"고 했다. 2부 전시 개막 열흘째인 23일, 두 점 중 한 점을 팔아도 봤다. "전시회가 시작된 지 꽤 됐는데도 작품이 안 팔려서 '이젠 그림을 벽에서 내리는 일만 남았구나' 했는데 은행에서 일하신다는 남자분이 '회사에 걸겠다'며 사 갔다. '어, 내 작품도 팔리네', 처음엔 당황해 가만히 있다가 그다음엔 웃었다. 너무 좋아서."

대학 졸업반인 정씨는 "수많은 경험을 안겨준 이번 아시아프를 계기로, 작가로서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 앞으로 그림을 통해 사람들과 계속 소통하고 싶고, 내년 아시아프에도 꼭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