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基에 최소 1조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 한국 조선 30년 먹거리로

남해안 일대에 호우주의보와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24일. 굵은 빗줄기를 뚫고 부산에서 경남 거제로 이어지는 거가대교를 건너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들어서자 거대한 철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900t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세계 최대 골리앗 크레인을 비롯한 100여기의 다양한 크레인이 하늘 높이 솟아있었지만 길이 305m, 너비 61m, 높이 100여m에 달하는 이 철 구조물은 위압적이었다. 이 거대한 구조물은 대우조선해양이 2010년 7월 프랑스 석유회사인 토탈로부터 발주 받은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 가격이 2조원에 달하는 한국 조선산업의 희망이다.

◇"FPSO가 대한민국 조선 30년 먹여 살릴 것"

FPSO는 흔히 바다 위에 떠 있는 정유소로 불린다. 갑판 밑부분은 상선(商船) 모양과 비슷하지만, 윗부분은 원유(原油) 정제를 위한 배관 설비가 설치된 게 특징이다. 보통 해안선에서 수백㎞ 떨어진 해상에서 작업하게 되는 FPSO는 수심 1000m 이상의 심해(深海)에서 원유를 퍼올려 정제한 뒤 갑판 밑부분에 저장했다가 유조선에 넘겨준다. 대우조선해양이 만들고 있는 FPSO는 우리나라 하루 원유 소비량과 맞먹는 178만배럴의 원유를 저장할 수 있다.

굵은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2000여 명의 인력이 FPSO 주변을 바쁘게 오가며 건조 작업에 열중이었다. 안내를 맡은 이병태 부장은 "조선소는 원래 비가 내리는 날엔 옥내 작업을 제외한 모든 작업을 중단하지만, 워낙 중요한 프로젝트이고 납기 기한이 빡빡해 잠시도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안전화·안전모·안전안경·안전벨트를 모두 착용한 뒤 건물 10층 높이의 계단을 이용해 선수 쪽 갑판에 올랐지만, 선미 쪽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복잡한 배관 때문에 안내 없이 움직이기도 곤란했다. 이 부장은 "우리가 갑판에 올라온 FPSO의 수주가가 약 18억달러(2조원)에 달한다"면서 "FPSO는 앞으로 최소 30년 대한민국 조선을 먹여 살릴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우리 기업이 고부가 해양 플랜트 수주 휩쓸어

실제 FPSO를 비롯한 드릴십(상선 모양의 석유시추선), 반잠수식 석유시추선 등 해양 플랜트는 현재 극심한 수주 가뭄을 겪고 있는 국내 조선업계의 마지막 버팀목이 되고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조선소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국내 대형 조선소가 그나마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해양 플랜트 때문이다.

현재 상선(商船) 신규 발주는 세계적 경기 침체로 세계 교역 물동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사실상 자취를 감춘 상태다. 하지만 국내 조선업계는 지난해 이후 세계적으로 신규 발주되는 FPSO·드릴십 등 고부가 해양 설비의 수주를 싹쓸이하면서 상선 부문의 부진을 만회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2007년 전체 수주액에서 상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육박했지만, 올 상반기에는 해양 플랜트 수주 비중이 70%에 육박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FPSO 외에 드릴십, 반잠수식 석유시추선 등 한꺼번에 20여기의 해양 플랜트를 건조하고 있을 정도로 해양 플랜트 특수를 누리고 있다.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넘나들면서 대형 석유회사마다 심해 원유 채굴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형 상선은 2000억원을 넘는 경우가 드물지만, FPSO나 드릴십은 최소 1조원을 호가한다. 이재하 대우조선해양 해양사업본부장은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조선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지만 저장량 150만배럴 이상의 대형 FPSO를 건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곳은 한국 기업밖에 없다"면서 "해양 플랜트에 강한 우리나라의 입장에선 현재의 위기를 충분히 새로운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 & Offlanding unit)

원유를 저장하는 하부 선체 구조(hull)와 원유를 정제하는 상부 설비(topside)로 구성된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 하역 시설’. 위치 제어장치로 작업 지점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수심 1000m 이상 깊이의 심해에서 채굴한 원유를 하부 선체에 저장했다가 운반선이 오면 넘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