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생로병사] 환자복을 입으면 김태희도 처량해 보인다

인생을 살면서 가능한 한 입지 말아야 할 옷이 있다면 죄수복과 환자복일 것이다. 이 둘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볼품없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허락 없이 벗을 수 없다는 것도 유사하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한때 줄무늬가 애용된 것도 비슷하다. 전염병이 창궐했던 중세 시절 병원이 수용소 개념이었을 때 쓰였던 복장이 최근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군(軍)병원에서는 아직도 줄무늬 환자복이 쓰인다.

환자복은 입는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초라하게 보이게 할 정도로 펑퍼짐하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의료진이 환자를 처치하기 쉬워야 하기 때문이다. 청진기로 심장 박동 소리나 등 쪽 폐 호흡음을 듣는 데 옷이 거추장스러워서는 안 된다. 환자의 배를 만져보는 일도 잦으니 윗옷은 올리기 쉽고, 바지는 내리는 데 편해야 한다. 바지의 허리춤이 끈으로 잡아당겨 조이는 파자마 스타일이거나 신축성이 좋은 고무줄이 애용되는 이유다. 그래야 엉덩이 주사를 놓기도 좋다. 지퍼 같은 금속성 물질이 옷에 박히면 엑스레이 사진 판독에 방해되니 쓰이지 않는다. 재질은 대개 촉감이 좋은 면을 쓰는데 일반 옷보다 얇다. 두꺼우면 체온에 영향을 주어 체온 평가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소매 끝단도 넓어야 손목과 팔뚝 주사가 접근하기 좋다. 어깨와 무릎 처치가 많은 정형외과 병동에서는 옷의 팔·다리 부분에 듬성듬성 단추를 박아 연결한 환자복을 쓰기도 한다. 치료 부위를 드러내고 덮는 데 빠르다. 한번은 응급실에 몸에 딱 달라붙은 스키니 진을 입은 젊은 여성이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실려 온 적이 있었다. 의료진이 골절과 외상(外傷) 유무를 파악하려고 하의(下衣)를 벗기려고 하는데 도저히 벗길 수 없게 되자 가위로 옷을 자르고 응급처치를 했다. 나중에 의식이 돌아온 환자가 병원에 스키니 진 값을 물어달라고 했단다. 말 그대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 환자복은 일단 그런 분쟁이 생길 일이 없다.

어찌 됐건 환자복은 기능면에서는 무난하지만 디자인 측면에서는 최악이다. 김연아가 입어도, 김태희가 걸쳐도 그 순간 바로 영락없이 '환자'로 보일 것이다. 수액 주삿바늘을 손에 꽂은 채 수액이 걸린 지지대를 끌고 병원 복도를 걸어 다니는 환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가뜩이나 불안하고 근심이 많은데 어깨마저 한없이 축 처져 보인다. 그것이 환자 복장의 은유(隱喩)다.

환자가 되면 다들 철학자가 된다. 실연의 아픔이 내면의 성찰을 가져다주듯 질병의 고통은 육체에 대한 자성을 안겨준다. 질병은 건강한 삶에 대한 실연이다. 무병장수(無病長壽)에 대한 기대는 짝사랑일 뿐이다. 육체의 질병이 정신을 일깨우고, 정신이 다시 자신의 몸을 보듬어 살아가도록 하는 게 인간 삶의 숙명이다. 그런 면에서 병원은 신체와 정신이 교차하는 '마인드 보디(mind & body) 수련원'이다.

한편으로는 자기 몸의 주인인 내가 질병 앞에서 너무나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곳이 병원이다. 평소 의사들이 거들먹거리는 것을 비난하다가도 환자가 되면 그 허세는 금세 사라진다. 병원은 능동적 인간을 수동적 인간으로 끌어내리는 신병 훈련소인 셈이다. 의사가 신(神)처럼 자신의 중병을 기적처럼 낫게 해주길 바라는 신앙인이 되어 영혼과 육체의 상처가 빨리 아물길 바란다.

하지만 요즘 병원은 너무나 전문화되고 대형화됐다. 기계처럼 돌아가는 진료 시스템 속에서 환자들은 갈수록 질병의 종류에 따라 나뉘는 의료 작업의 대상이 되고 있다. 주체적 인간이 환자 등록번호를 부여받은 치료 객체로 옮겨간 것이다. 경제성과 효율성이 강조되는 현대 의료에서 병원은 점점 의료 소비자를 상대하는 의료 비즈니스 장소로 바뀌고 있다. 병원은 이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점적 위치를 확보한 기업이 됐다. 증상에 따라 거부할 수 없는 검사가 쏟아지고, 진단에 따라 피할 수 없는 치료법이 숨 가쁘게 돌아간다. 인본주의(人本主義) 차원에서 위로받고 싶은 환자들, 최고의 진단과 치료 작업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려온 현대 의학의 기능주의. 그 둘의 충돌과 모순 현장이 지금의 병원이다.

아프니까 환자다. 이제 병원을 힐링 캠프로 바꿔보자. 환자에게 진정한 위로를 주는 곳으로 병원을 변화시킬 수는 없을까. 환자복도 신선한 색감과 디자인으로 바꿀 수는 없나. 언제까지 병원을 교도소처럼 갇힌 곳으로 느끼고, 진단과 치료에 치이는 곳으로 여기며 살아야 할까.

미래는 수명 연장 시대다. 병원이 단순히 질병 치료 공간으로 그치기에는 우리 생활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신체 치료와 정신 치유가 통합된 병원을 사회가 공유하기 위해 다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 현대인의 삶은 누구나 시작과 끝이 '환자'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