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68] '투신 메카' 된 한강 인도교 '잠깐만…' 팻말까지 등장

'一寸待機(일촌대기·잠깐만 기다리세요)'.

1917년 10월 7일 한강인도교('한강대교'의 전신)가 개통된 직후 다리 난간에 큼지막한 네 글자의 한자 표어가 내걸렸다. 자동차와 보행자를 위한 최초의 한강 다리는 순식간에 경성의 명물이 됐지만, 다리에서 투신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해 사회문제로 대두했기 때문이다('한국 건설 기네스'). 수백 년간 배 타고 건너던 한강물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건 신기한 구경거리였지만, 사는 게 힘들던 일부 사람에겐 '치명적 유혹'이기도 했다. 1921년 말 어느 시민은 휴일 저녁 한강 다리에 산책하러 갔다가 함께 간 여성이 '시름 업시 흘너가는 한강물의 자연의 미(美)를 본 져는 참으로 빠져죽고 십허요'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이 부자유한 세상이라는 동산에 오래 머물너 잇기가 실허서 아름다운 자연의 품에 안긴 채로 영원한 안락의 잠을 자고자 하는 가련한 이런 여성들'을 안타까워하는 독자 수필을 기고했고, 조선일보는 이를 1면 한복판에 실었다(1921년 12월 11일자).

1002m를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조선 최대의 다리가 생기자마자 실연(失戀)을 비관한 처녀, 생계가 막막한 청년, 심지어 '조선독립'의 한을 품은 청년도 강물에 뛰어들었다(1923년 6월 17일자). 1923년부터 1937년까지 한강 투신자는 832명이었다(1938년 8월 27일자). '연평균 178명'쯤 되는 요즘 통계에 비해 훨씬 적지만 당시로선 충격은 컸다. 신문은 '마(魔)의 한강' '한강(漢江)이냐… 한강(恨江)이냐…'(1935년 3월 4일자) '자살자 메카'(1936년 5월 13일자)라는 탄식의 말을 쏟아냈다. 17개 일간신문의 용산경찰서 취재기자단은 1923년부터 1930년대 말까지 여름만 되면 한강 철교 앞에서 '위령제'를 올렸다(1938년 8월 27일자).

경찰은 한강 인도교 파출소를 특별히 설치했다. 투신을 하려는 듯한 사람을 발견하면 달려가 보호하고 직업도 소개해 줬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엉뚱하게도 어느 25세 실직 청년은 '공밥을 어더먹고자 하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는 척하려다 탄로나기도 했다(1926년 6월 26일자). 당국은 마침내 다리 위에 여러 명의 병력을 상주시키는 마지막 카드를 뽑았다. 경찰과 소년 척후대(斥候隊·보이스카우트)가 '천금으로 밧글 수 업다는 생목숨을 끈는 사람을 구조하고저' '밤과 낫을 불계하고(가리지 않고)' 한강 다리를 지키는 진풍경이 빚어졌다(1926년 7월 3일자, 1929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