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얍얍" 지르고 108배 하고… 배우 기본기 다지기 이렇게 힘들 줄이야

"싸워봅시다!" 좌중을 둘러보던 '사부(師父)'가 지시했다. "얏! 얏!" 뚝뚝 끊어지는 구호와 함께 기마 자세로 앉아있던 18명의 팔과 다리가 쭉쭉 허공으로 뻗어나갔다. 곧바로 '우! 어! 스! 사! 히! 호!' 짧고 힘찬 호흡이 이어졌다.

마치 무술 훈련장을 보는 듯한 이곳, 지난 25일 오전 11시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리 극단 미추 산방의 광경이다. 18명은 지난 5월 국립극단이 '부트(Boot) 캠프'라 부르는 엄격한 배우 훈련에 자원했다. 동물 소리인 듯 음향 효과인 듯 낯선 구호는 '소리 훈련'의 일환이었다. 6개월짜리 훈련 과정의 원래 명칭은 '차세대 연극 스튜디오'. 20명 뽑는 데 120명이 몰렸다. 교육은 무료이며, 교통비 조로 한 달에 30만원씩 지급한다. 6일간의 합숙 훈련 마지막 날인 25일, 이들의 하루를 지켜봤다.

◇"배우의 신체로 무대에 서야 한다"

훈련생은 입산수도 하듯 '일상의 자신을 버리라'고 배운다. 밥, 빨래, 청소는 각자의 몫. 교육 전반을 맡고 있는 국립극단 전 상임연출가 이병훈씨는 "자기 몸을 움직여서 얻으라"고 강조했다. 일과는 아침식사 당번이 기상하는 오전 7시에 시작된다. 나머지 사람들은 8시에 일어나 청소를 시작한다. 이날 아침 반찬은 된장찌개, 멸치조림, 나물 무침이었다. 오전 10시, 훈련생들이 108배를 시작했다. 육체와 정신의 균형을 위한 워밍업이다. 20여분 후, 신체 훈련에 들어갔다. 무술 단수 합이 23단이나 된다는 이상철씨가 이들의 몸을 '재조립'하는 교관이다. "일상의 신체를 가지고 들어오지 말라! 배우의 신체로 무대에 서라!" 훈련생들을 돌아보던 이씨가 호령했다.

시작은 축구 선수들의 가로막기 동작이었다. 이씨의 박수에 따라 18명은 순식간에 일어나고 재빨리 누웠다. "무대라는 공간을 장악하려면 순간적인 움직임을 익혀야 한다"는 설명. 지난 5월 훈련 초기에는 부상자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이날도 목의 인대가 늘어나 보호대를 착용한 훈련생과 발목에 붕대를 감은 이가 눈에 띄었다.

11시 30분, 곤욕스러운 소리 훈련 시간이다. 기계 소리가 방해되기 때문에 에어컨은 못 튼다. 극장에서 땀으로 세수하면서도 힘차게 '얍얍' 구호를 외쳐야 한다. 이날은 다행히 바람이 약간 불었다. 소리 훈련을 맡은 류미씨는 "배우의 적(適)은 패턴"이라며 "소리도 습관의 벽을 부수도록 가르친다"고 했다.

◇"힘들수록 견고해지는 희열 느껴"

만둣국 점심 식사 후, 오후 1시 30분부터 '장면 연습' 시간이다. 일상적인 동작을 깨끗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몸동작 연습에 들어갔다. 훈련생 중 한 명이 '본다!' '잡으려 한다!' '잡는다!'라고 외치자 18명의 몸이 일제히 돌아갔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골반. 팔다리가 아니라 골반의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 때 무대 움직임에 힘이 실린다.

2조로 나뉜 훈련생들은 황석영의 소설 '손님' 중 12개 부분을 골라 장면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살을 붙이고 이어서 정식 공연으로 올릴 예정. 훈련생인 옥자연(24)씨는 지난 2월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차세대' 오디션을 봤다. 옥씨는 "배우가 되려면 몸과 마음을 닦아야 할 것 같아 지원했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대학로 연극 무대에 섰던 송의동(31)씨는 "정식 배우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늘 갈증을 느꼈다"며 "육체적으로 힘들수록 정신이 견고해지는 희열을 맛봤다"고 말했다.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최근 민간극단에서 주춤하고 있는 배우 훈련 시스템 재정립을 위해 국립극단이 앞장섰다"며 "연극 정신은 물론 기본기가 철저한 배우들이 연극 발전의 토대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7시, 일행은 서울행 단체버스에 올랐다. 교육은 내달 28일까지 이어진다. 훈련을 마친 '차세대'들의 '손님' 공연은 10월 5~28일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