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팝 컬처] 현기증 나는 '스마트 코리아'의 속도戰
입력 : 2012.08.29 22:57
나는 트위터를 하지 않는다. 페이스북도 하지 않는다. '트친'도 없고 누가 '팔로'하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왜 안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요즘엔 사뭇 진지하게 "웬만하면 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친구들 모임에 가면 트위터나 페북에서 본 것을 화제로 삼는다. 예전엔 나에게도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해주더니 요즘엔 "안 하니까 모르지" 하며 면박을 준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안 하는 게 문제라면 신라면을 안 먹거나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지 않아도 잘못인가.
얼마 전 20대가 주축인 모임에 갔더니 각자 이름과 연락처를 쓰라고 백지를 돌렸다. 종이에는 이름과 페이스북 주소를 적는 빈칸 두 개만 있었다. 이메일과 휴대전화는 벌써 구식이 됐다. 이토록 빠르게 질주하는 사회를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페이스북 주소가 구식이 되는 속도는 분명 더 빠를 것이다.
단지 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그렇게 많은 사람의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알고 싶지 않다. 이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만으로도 이미 쓸데없이 알게 되는 게 너무 많다. 그 거대한 대화망(網)에서 오가는 이야기란 게 대부분 별것 아니다. 연락 않고 지내던 고교 동창이 페이스북 때문에 20여년 만에 '친구'가 됐는데, 듣느니 '오늘 곱창에 소주 마셨다'거나 '퇴근길 되게 막힌다'따위란다.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너 그렇게 살지 마라'며 훈계하는 일도 있다니, 그걸 할 이유가 없다.
트위터의 계급적 속성도 싫다. 요즘 사람을 소개받을 때 "팔로어가 몇 명"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정치인·연예인이야 그걸로 먹고 사는 이들이니까 그렇다 쳐도 팔로어가 무슨 대단한 추종자인 양 허풍 떠는 게 우습다. 나에게는 밥 한 끼 함께하기로 해놓고 아직 약속을 못 지킨 진짜 친구가 '트친'이나 '페친'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 이미 좋은 관계인 사람들과 더 두텁게 우정을 쌓고, 그들에게서 소개받는 사람들을 알아 가기에도 벅차고 바쁘다.
그래서 디지털 일변도인 세상을 거스르려는 사람을 보면 반갑다. 독일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프 코흐는 40일간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끊고 생활한 기록을 '아날로그로 살아보기'라는 책으로 펴냈다. 그는 친구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좌절하고 인터넷 검색도 못 하는 무능력자로 취급받기도 했다. 그러나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줄 알았던 '오프라인의 세계'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었고, 특히 '친구'와는 훨씬 더 가까워졌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날로그 생활 마지막 날 비치보이스(Beach Boys)의 음악을 아이팟이 아니라 LP로 들으며 과거를 추억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없이 사는 것이 꼭 바람직하지는 않다. 다만 사회가 그것에 의존하는 속도가 문제다. 노년층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어렵고, 저소득층은 그 비용을 감당하기 버겁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마치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수도나 전기 쓰듯 하는 것처럼 돌아간다.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레빈의 말처럼 "우리는 속도에 중독돼 있고, 속도는 우리를 자극하고 몰아댄다." 그 속도를 만들어내고 절대선(絶對善)인 양 떠받드는 것은 휴대폰을 만들어 파는 대기업들이다. "빠름, 빠름, 빠름" 하고 노래하는 광고는 얼마나 노골적인가. '스마트하게 사는 법'이란 광고는 결국 전화기를 바꾸라는 소리다.
어차피 세상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엔 어떻게 인터넷을 했어요?"라고 묻는 아이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속도에 대한 관용이 지나쳐 너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국가'라는 타이틀을 얻는 사이 온갖 불법 다운로드와 포르노의 범람, 스마트폰 성매매와 집단 문자 폭력이란 범죄가 우리 안에 뿌리를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사회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 안전띠 맬 틈도 없어 곳곳에서 코가 깨지고 머리가 터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