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TALK] 종잡을 수 없는 날씨… '캡슐 컬렉션'이 뜬다

"날씨 분석을 위한 전략팀을 따로 가동해야 할 판이에요. 그렇지 않고선 도저히 장사를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최근 만난 한 국내 의류회사 대표가 들려준 말이다. 유례없는 폭염에 비, 태풍까지 최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패션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일단 초봄·초가을을 겨냥해 내놓은 옷은 팔릴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고 한다. 몇몇 의류 회사는 '재고 처리'를 위한 각종 이벤트를 몇 달째 열고 있다. 올여름 장마가 예년보다 한참 늦게 찾아온 데다 태풍까지 잇달아 몰려와 사람들이 외출을 아예 삼가다 보니 비옷과 레인 부츠를 야심 차게 준비했던 아웃도어 업체들마저 울상을 짓고 있다고 한다. 한 업체 마케팅 과장은 "드라마 간접광고(PPL)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한들, 비가 알맞게 내려주질 않으면 광고가 무슨 소용이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업계에선 "기존처럼 봄·여름, 가을·겨울에 한 번씩 컬렉션을 발표하고 패션쇼를 하던 관행을 깨고, 날씨와 유행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더 자주 컬렉션을 발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발맞춰 최근엔 티셔츠나 액세서리 등으로 10~20개 제품을 꾸려서 내놓는 작은 단위의 컬렉션인 이른바 '캡슐 컬렉션(Capsule Collection)'을 활용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마크 제이콥스·이브생로랑·랑방 같은 명품 브랜드는 물론이고, 오즈세컨을 비롯한 우리나라 패션 업계도 이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추세다. 오즈세컨 담당자는 "날씨가 이상해지면서 자꾸만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려고 하는데, 이럴수록 눈길을 끄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면서 "관심을 환기하는 의미에서도 캡슐 컬렉션은 유용하다"고 했다.

실제로 캡슐 컬렉션으로 발표하는 제품들은 대개 봄·여름, 가을·겨울마다 으레 내놓는 의상이나 액세서리보다도 더 빠르게 팔려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난여름 겐조와 모자 회사 '뉴에라'가 함께 발표한 캡슐 컬렉션 제품은 내놓자마자 매진이 됐고, 오즈세컨이 올여름 스페인 일러스트 작가 에바 알머슨(Armisen)과 작업했던 캡슐 컬렉션도 인기였다. 패션 컨설팅 회사 크리에이티브 팩토리 안수경 디렉터는 "패스트 패션이 유행하면서 신상품이 2주마다 한 번씩 나오는 추세다. 국내 패션 업계도 이런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캡슐 컬렉션을 더 열심히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