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향해 뛰는 기업] 64년 잉크 생산… 독자 기술로 日시장도 뚫어

지난달 28일 오전 경기도 평택 동양잉크 제1공장. 정문 기둥에 '소재 국산화 선도기업'이란 팻말이 붙어 있었다. 국산 전자잉크 개발에 성과를 낸 공로로 지난해 경기도에서 받은 것이다. 전자잉크는 컴퓨터·휴대전화·TV 등 전기전자 제품의 회로기판에 사용된다. 동양잉크는 일본 제품이 90% 이상 독식하는 시장에 4~5년 전 뛰어들어 점유율을 5%나 빼앗아 왔다.

공장에 들어섰다. 분쇄·혼합기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며 노랑·검정·빨강·파랑 잉크를 쏟아낸다. 송진이 주 원료인 합성수지를 식물성 콩기름과 혼합해 200도에서 끓인 뒤 각종 안료와 용해 물질, 첨가제 등을 섞어 10시간 숙성시키고, 곱게 가는 공정이 계속됐다. "4원색을 포함해 16가지 기본색을 만들고, 이를 다양하게 배합해 5000여 가지 색의 잉크를 만들고 있어요. 고객이 원하면 무슨 색이든 만들 수 있죠."(최대광 대표)

◇세계 시장을 두드리다…자존심 강한 일본 시장도 뚫어

동양잉크는 1948년에 설립됐으니, 6·25전쟁 이전에 이미 탄생한 장수기업이다. 그 바탕은 '독자 기술'이었다. 최 대표의 아버지 고(故) 최수학 회장은 광복 후 철공소에 근무하다 일본 기업이 남기고 간 인쇄잉크 제작기계를 인수했다. 처음엔 일본 기업이 쓰다 남은 재료를 구입, 단순 가공해 파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차츰 독자 기술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일본 전문서적은 물론이고, 인쇄 선진국인 일본 기업을 방문하거나 전문가를 수소문해 기술지도를 받기도 했다. '기술 동냥'이었던 셈.

잉크 제품의 품질은 갈수록 좋아졌고, 고객들은 점점 늘었다. 몇년 전 물량이 가장 많은 오프셋(offset·책이나 잡지 등에 사용되는 인쇄) 잉크 시장 1위에 올라서면서, 국내 잉크 업계 일인자가 됐다. 1975년 개발한 합성수지는 잉크 업체 중 유일하게 자체 제작한다.

동양잉크의 장수 비결에는 해외시장 개척도 큰 기여를 했다. 최 대표가 1985년 기획실 과장이 되면서 해외시장 개척은 시작됐다. "당시 아시아 잉크 시장은 일본 기업이 100%라 할 정도로 완전 장악하고 있었죠. 동남아 국가들은 품질은 좀 떨어지지만 가격 경쟁력이 있는 잉크 업체를 찾고 있었고요. 영어는 잘 못했지만 무작정 6~7개국을 찾아갔습니다." 틈새시장 공략은 성공했다. 동양잉크는 현재 전 세계 43개 국가에 국산 제품을 수출 중이다. 지난해엔 전체 매출 850억원 중에서 수출이 427억원을 기록, 처음으로 국내 매출을 앞질렀다.

콧대 높고 진입이 거의 불가능하다던 일본 시장도 뚫었다. 지난해 3월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이후, 일본 인쇄 업계는 '일시적'인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동양잉크에 손을 내밀었고, 이후 일본 시장 매출은 봇물이 터졌다. 2010년 80t이던 것이 작년엔 1050t이 됐고, 올해는 6월까지 이미 900t을 넘어섰다. 지난 7월 말엔 국내 업체론 처음으로 일본 환경(ECO) 마크를 획득했다.

◇처음부터 불리한 게임…정보와 기술로 이겨낸다

최 대표는 "국내 잉크 업계가 태생적인 불리함을 안고 있다"고 했다. 세계 인쇄 시장을 주름잡는 독일과 일본에선 인쇄기 제작과 거의 동시에 잉크 연구가 진행되지만, 국내에선 3~4년이 지나 인쇄기가 도입된 이후에야 잉크 개발이 시작된다. 동양잉크는 세계 인쇄 시장의 변화와 신기술 정보를 재빨리 포착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지난 5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인쇄 박람회인 'Drupa(드루파)' 전시회에 국내 업계 최초로 참여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최신 LED(발광다이오드) 인쇄기가 출시된다는 정보를 입수, 곧바로 맞춤형 잉크를 개발하기도 했다. LED 인쇄기는 국내에 2대만 들어온 상태다.

친환경 잉크 개발에는 회사 사활을 걸고 있다. 주력 상품인 '마이다스'는 인쇄기에서 건조되는 온도를 240도에서 200도로 낮췄다. 그 결과 인쇄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20% 줄여 유해 탄소 배출이 뚝 떨어졌다.

동양잉크는 또 다른 도약을 꿈꾸고 있다. 제품과 시장 다각화를 통해 진정한 국제적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중국·동남아 지역을 상대로 한 저가(低價) 제품군은 중국 현지 공장이 맡고, 고가 제품은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는 이원화 전략을 세웠다. 최 대표는 "북미에 단순히 제품 수출을 넘어, 현지 공장을 세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