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함 눈물닦기, 달동네 신부님의 '등불 43년'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남을 위해 써야 합니다. 필요 이상을 가진 사람이 많은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46년 동안 한국에서 가난하고 병든, 소외된 이웃을 돌봐온 노 신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검정 사제복 대신 면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만나는 사람마다 "아픈 사람, 슬퍼하는 사람, 배고픈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신부는 뉴질랜드 출신의 브레넌 로버트 존(71) 신부다. 한국 이름은 안광훈. 1966년 한국땅을 처음 밟은 후 그는 줄곧 '빈자(貧者)의 등불'로 살아가고 있다. 삼양동 달동네에서만 20년째 도시 빈민들과 함께해 온 안 신부는 "돈·권력·명예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 자신이 '가난한 사람'이다. 그는 승용차도 휴대전화도 갖고 있지 않다. 강북구 송천동의 다세대주택 전셋집에는 TV조차 없고 옷은 단벌신사다. 구두와 외투도 몇년째 똑같다. 환갑잔치 때 선물받은 한복을 칠순잔치 때도 입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안 신부가 한국의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삶을 시작한 것은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강원도 정선의 본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그는 농협이 있으면서도 가난한 농민들이 대출을 받지 못해 고통받는 것을 목격했다.

안 신부는 "적은 돈 때문에 애를 먹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봤다"며 "치료비, 전기료, 애들 교육비가 없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저소득층 대출을 위해 주민들과 함께 한 계좌당 100원씩 모아 1972년 정선신용협동조합을 세웠다. 현재는 400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대규모 조합이 됐다. 그는 또 병원이 없어 맹장과 같은 병으로도 사망하는 정선 주민들을 위해 1975년 정선에 성 프란치스코 의원을 건립, 가난한 주민들이 저렴한 병원비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안 신부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회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1981년 서울 목동성당 주임신부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도시 철거민과 빈민들을 위한 그의 헌신은 계속됐다. 그는 정부가 88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목동 신시가지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안양천변에 모여 살던 가난한 이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모습을 목격했다.

안 신부는 "가진 것도 없고, 아무 힘도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포악하게 쫓겨나는 것을 봤다"며 "그들을 위한 뚜렷한 정책이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오갈 곳 없는 철거민들에게 성당 본당 건물을 사용하도록 내줬다. 또 여기저기서 1000만원을 모금해 선뜻 내놨다. 철거민 100여 가구는 그가 마련해준 종잣돈으로 경기도 시흥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안 신부는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을 때 "빈민 사목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뜻을 간곡히 전했고, 김 추기경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1992년 그는 서울 강북구 미아6동 달동네에 들어가 전세방을 얻어 살면서 빈민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의 전세방은 늘 철거를 앞둔 세입자들의 대책회의가 열리는 장소였다.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그 자신이 살던 전세방에서도 쫓겨났고, 주민들과 함께 세입자로서 권리 보장과 임시 거주지 마련을 정부에 요구했다. 그 결과 1997년 미아7동에 임시 이주단지 건립 성과를 이끌어냈다.

안 신부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자 서울 북부 실업자 사업단 강북지부 운영위원으로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요즘엔 저소득층을 위한 '한바가지' 소액대출 사업을 진행 중이다. 무담보 생활자금을 최대 200만원까지 대출해 주민들이 학자금, 병원비, 긴급생활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1960년대 한국은 잘사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40여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이 있어요. 남은 생도 이곳에서 그들과 보내며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잘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안 신부는 이 같은 공로로 올해 서울시 복지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4일 오후 2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