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점 포화… "1600억(지점 유지 위한 예금 손익분기점·서울 강남 기준) 유치해야 생존" 몸부림

경기도 파주의 외환은행 교하지점 홍인숙(39) 과장은'책 읽어주는 은행원'이다. 아이를 동반한 고객이 오면 아이를 대신 돌보면서 동화책을 읽어준다. 지점 한쪽엔 동화책이 가득 꽂힌 책장, 홍 과장이 아이와 함께 앉을 소파가 마련돼 있다.

홍 과장이 책 읽어주는 은행원으로 나선 이유는 뭘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그는 답했다. 외환은행 교하지점은 주변 500m 안에 시중은행 지점만 7곳이다. 게다가 외환은행은 다른 은행들이 모두 자리 잡은 뒤에 '꼴찌'로 문을 열었다.

"시장을 선점한 다른 은행들을 따라잡으려면 특별한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두 아이를 키우는 제 눈높이로 봤더니 아이와 함께 오는 고객들부터 잡아야겠더라고요."

이 차별화 전략은 주효했다. '색다른' 서비스로 소문이 나면서 외환은행 교하지점 고객 숫자는 2년 만에 50% 가까이 늘었다.

◇컨테이너 점포까지 등장

KB국민은행은 지난 6월 초 경기 남양주 별내신도시에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은행 점포를 선보였다. 신도시 공사장 한가운데에 컨테이너 박스 6개를 합쳐 은행 점포를 연 것이다. 100㎡ 정도 되는 공간에 현금 입출금기 2대와 상담창구 6곳 고객 대기 소파 등이 갖춰져 있다. 예·적금, 카드·환전·송금 등 안 되는 업무가 없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점포 임대료도 아끼고, 신도시 입주 초기 고객을 선점할 수 있어 컨테이너 점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컨테이너 점포는 이달 중순 트레일러에 실려 또 다른 신도시, 김포 양곡지구로 이사 갈 예정이다. 제작비용 2억7000만원이 들어간 이 컨테이너 지점은 앞으로 4년 동안 여러 신도시에서 재활용될 계획이다.

씨티은행 압구정중앙지점은 대한민국 상류층 거주 지역에서 동네 사랑방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건물 1~2층은 창구와 PB센터가 들어서 여느 은행과 차이가 없지만, 3~4층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그림 동호회가 모여 미술사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세미나룸, 늦둥이 자녀를 위해 생일잔치를 열어줄 수 있는 라운지,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야외 테라스…. 이종숙 지점장은 "40대 이상 고액 자산가 고객을 잡으려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지점 공간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고 말했다.

◇"강남 지점 하나 운영하려면 예금 1600억원 이상 유치해야"

은행 지점들이 변신에 몸부림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지점 숫자만 늘리면 고객은 늘게 돼 있다"는 공식이 깨진 탓이다. 이미 은행 지점 숫자는 포화 상태다. 2008년 이후 전국의 은행 지점 숫자는 7500개 안팎에서 늘지도 줄지도 않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고비용 지점을 운영하려면 새 수익원을 발굴하는 데 목을 매야 한다. A은행 내부 자료에 따르면 서울 강남 지역에 지점 1곳을 내려면 임대보증금, 시설공사비만 31억1000만원이 든다.

A은행 지점장은 "비용을 건지려면 1660억원 이상 예금을 유치해야 하기 때문에 전방위 영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점 무용론(無用論)'도 제기된다. 인터넷뱅킹, 텔레뱅킹, 자동화기기 이용이 크게 늘면서 지점 창구를 찾는 고객이 빠르게 줄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0년 12월 전체 입출금·이체 거래 중 15.5%가 지점 창구에서 이뤄졌지만 불과 1년 반 만에 이 비율은 12.3%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SC은행 파업 사태는 지점 무용론을 촉발시킨 계기로 꼽힌다. SC은행 노조는 두 달간 장기 파업을 벌였고, 파업 기간 동안 사측은 340개 지점 중 42개를 폐쇄했지만 예금 이탈은 1.8%에 그쳐 영향이 미미했다. 인터넷뱅킹이 원활했고 비정규직이 대체했기 때문이었다. 파업이 끝난 이후 임시 폐쇄했던 42곳 중 15곳을 아예 없앴지만 영업에 별다른 지장이 없다고 SC은행은 밝혔다.

◇비용 많이 들지만 지점엔 공익적인 기능도 있어

하지만 지점 숫자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지점은 금융 거래뿐 아니라 세금, 공과금 수납 기능도 있어 일정 숫자 이상을 전국에 고루 분포시킬 공익상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조가 강력한 은행에서 지점을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다.

'지점 유용론(有用論)'도 여전히 강하다. 스마트폰 시대가 됐다고 해도 새로 계좌를 트려면 지점에 가서 금융실명제법에 따른 본인 확인 등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BCG(보스톤컨설팅그룹)의 박상순 파트너는 "금융상품 정보는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든지,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 지점들은 차별화된 서비스로 승부를 걸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