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세계에 통하는 건, 퓨전 아닌 한국 스타일"

소박한 사찰음식과 얼큰한 김치찌개, 아서왕 이야기 같은 한국의 신화, 싸이의 강남스타일 같은 한국 음악….

프랑스·영국·터키의 문화 리더들은 본지 인터뷰에서 이런 점을 한국 문화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밝혔다. 31년 경력의 프랑스 요리 인간문화재 에리크 트로숑(48), 세계에서 가장 큰 문화 자선단체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의 저스틴 앨버트(47) 이사장, 30년간 세계 문화 교류에 공을 세워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은 고르균 타네르(53) 터키 이스탄불 국제문화예술재단 대표를 2일 서울 한 호텔에서 릴레이 인터뷰했다. 이들은 "70억 인구가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정치도 경제도 아닌 문화뿐"이라고 말했다.

◇"얼큰한 맛이 한국음식 경쟁력"

프랑스 요리장인 트로숑씨는 웰빙을 추구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사찰음식'이 가장 큰 한식의 경쟁력이라고 했다. "사찰음식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재료로 만들죠? 최근 프랑스에서 유행하는 '로카보(locavore) 운동'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로카보 운동이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운송하는 식재료 대신 신선한 지역 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먹자는 운동이다.

트로숑씨는 '퓨전 음식' 형태의 음식 세계화에는 반대했다. 음식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맞는 독자성이 있는데, 그걸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변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트로숑씨는 "디자이너 코코샤넬이 '유행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영원하다'고 했듯, 프랑스 요리는 '고유성'을 보존했기 때문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며 "한국 요리는 전채 요리부터 메인 요리까지 하나로 묶은 '한 그릇 음식'이라는 고유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8년 이후 10번이나 한국을 찾았다. 그는 "고추장과 된장 같은 발효 음식,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얼큰한 '김치찌개', 색과 음식이 조화를 이룬 '비빔밥'이 한식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신화가 유산을 만든다"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문화 자선단체다. 직원 수는 6000명, 자원봉사자들은 7만8000명에 달한다.

내셔널 트러스트의 저스틴 앨버트 이사장은 "이런 유산(遺産)에 대한 영국인의 사랑과 열정이 영국 문화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영국인들이 존경하는 것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내셔널 트러스트가 보호하는 것은 성과 궁전 같은 문화유산, 산과 언덕 같은 자연 유산, 해안선 같은 해양 유산이다. 앨버트 이사장은 "박물관처럼 통제된 경험만으로는 과거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영국에서는 '아서왕 이야기' 등 전설들이 반영된 산과 언덕 등의 자연 유산이 있다"며 "특이할 것 없어 보이는 자연도 신화와 전설이 함께 보전돼 덧칠된다면 중요한 문화유산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앨버트 이사장은 "한국에 있는 아름다운 산과 강, 그와 연관 있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전설과 신화는 개발하고 보존해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타네르 "강남 스타일 좋아해"

터키 이스탄불 국제문화예술재단 대표 고르균 타네르는 지난 30년간 유럽에서 각종 문화 단체 대표를 역임한 문화계 '거물'이다. 하지만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그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호피 무늬 안경을 쓴 '젊은이 스타일'이었다. 타네르 대표는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좋아해 유튜브로 자주 듣는다"며 "말춤도 잘 춘다"고 했다. 그는 "한국 문화의 가장 큰 경쟁력은 중독성 있는 현대 음악"이라며 "현대 예술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한국은 문화 선진국"이라고 말했다.

타네르 대표는 "과거 역사에서도 '문화의 황금기'였던 시절의 문물들이 지금도 높은 가치를 가진 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며 "문화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높여 지금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해야 한다. 이런 노력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문화적 연속성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DJ가 꿈이라는 타네르는 "70억 세계 인구가 모두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건 정치·경제 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문화"라며 "문화만이 전 세계인을 소통하게 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