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모든 비극은 '상실'에서 시작됐다

김기덕(52) 감독의 신작 '피에타'(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란 뜻)가 4일(한국시각) 제69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공식상영회를 연 것과 동시에 이날 한국에서도 언론 시사회를 가졌다. '피에타'는 한국 작품으로는 2005년 '친절한 금자씨'(감독 박찬욱) 이후 7년 만에 이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영화는 끔찍한 방법으로 채무자들에게 돈을 받아내는 강도(이정진)에게 "너를 낳자마자 버린 엄마"라는 여자(조민수)가 찾아오며 시작된다. 처음 강도는 여자의 정체를 의심하며 밀쳐내지만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여자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가 사라지고 두 사람의 진짜 관계가 드러난다.

김 감독은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피에타'에 대해 "돈 때문에 얼마나 가족이 해체되고, 사회 구성원이 혼란을 느끼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강도가 돈을 받기 위해 채무자를 불구로 만들어 버리거나, 자살한 채무자 대신 쪽방에서 홀로 사는 채무자의 노모에게도 패악을 저지르는 전반부 장면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최근 3~4년간 칩거를 하며 과거의 어떤 사건, 상황, 인물들을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고,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에까지 출연한 김 감독의 최근 행보처럼 영화도 전작들에 비해 한결 친절해진 느낌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는 '상실에 대한 공포'다. 영화 속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나 육체를 잃게 될까 두려워한다. 상실을 두려워하기는 냉혈한 강도도 마찬가지다. 돈도 없고 가족도 없이 30년을 살아오던 강도가 여자를 엄마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의 악행은 끝나지만 비극이 시작된다. '엄마'를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면서 점차 무너지는 것이다.

영화 '맨?'(1995) 이후 17년 만에 영화에 본격 출연한 조민수는 아들에 대한 극단적인 모성을 보여주는 여자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살아있는 닭과 장어를 맨손으로 잡기도 하고, 수차례 뺨을 맞는 등 몸을 사리지 않는다.

김기덕 감독의 말처럼 '피에타'는 그의 전작들에 비해 대중에게 가까워진 영화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두뇌 노동'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여자와 강도의 성적인 행동이나 영화 후반부 공장 안에서 강도와 여자가 대면하는 장면 등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도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이것이 포인트!]

#대사  "불안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질까 봐." (여자를 엄마로 받아들인 뒤 조금씩 달라져 가는 강도가 하는 말.)

#장면  여자가 냉장고에 담긴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장면.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비탄에 잠긴 모습을 묘사한 회화·조각 '피에타'의 한국적 표현 같다.

#해외평  "관객은 (영화의) 폭력 대부분에 눈을 계속 감고 싶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감동적인 한국 영화." (할리우드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