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으로 아팠고 물감으로 나았다

유성 안료는 때로 화가들에게 두통을 안겨준다. 조택호(55)가 겪은 건 두통 정도가 아니었다. 1988년 동양인 최초로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수석졸업, 르몽드지의 '올해의 떠오르는 작가' 선정 등 승승장구했던 그는 1996년 '증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안료의 유해 성분에 중독돼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뇌의 이상으로 그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증상은 2007년 무렵까지 지속됐다.

어느 날 그는 화실 바닥에 떨어진 물감 방울이 그려낸 작은 동그라미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묘한 아름다움이었다. 색점을 화폭에 반복적으로 찍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나는 그 동그란 점을 보며 새로운 조형을 발견하게 됐고, 언제 채워질지 모르는 멀고도 긴 점의 여행을 시작했으며, 그런 행위를 통해 나의 삶과 예술에 희망의 길을 열었다."

조택호의 그림은 신인상주의 화가 조르주 쇠라(Seurat·1859~1891)를 연상시킨다. 화면을 빼곡히 채운 색점(色點), 여행하면서 만난 햇살 따사로운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초원과 언덕, 해안 풍경. 그러나 그 '색점'은 조택호의 고통과 방황, 희망과 극복의 상징이다. 노르망디는 그림을 그리지 못해 고통스러웠던 작가에게 마음의 안식과 위안을 준 곳. 화가는 "노르망디의 대자연 속에서 화가의 희망을 다시 찾았다. 나는 망설임도 없이 내 몸과 영혼을 그곳에 맡겼다"고 했다.

16일까지, 가나아트센터 (02) 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