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정명훈이 노래했다… 동갑내기 기업 회장과 함께

5일 오후 7시 50분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 신창재(59) 교보생명 회장과 정명훈(59)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마련한 이색적인 듀엣 공연이 펼쳐졌다.

"그대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일 때 그 눈물 닦아 드리고. 세월이 힘겹고 친구도 찾을 수 없을 때 거친 물살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돼 드리겠어요…."

신 회장과 정 감독이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1970년 히트곡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영어로 함께 열창하자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휘자인 정 감독이 공개 무대에서 지휘 아닌 노래를 한 것은 이례적인 사건이다. 정 감독은 공연 시작 전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하는 건 평생 처음인데 신 회장과는 겨우 30분 서로 입을 맞춰본 거라 큰 걱정"이라더니, 피아노 연주와 함께 매력적 저음을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노래를 마친 뒤 앙코르 요청까지 받자 그는 "클래식 그만두고 팝(pop) 해야겠어요"라고 농담도 던졌다.

공연을 앞두고 매일 기타 연습하느라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였다는 신 회장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진지한 표정으로 노랫말에 담긴 깊은 뜻을 전달해냈다.

이날 공연은 교보생명이 VIP 고객 300여명을 초청해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마련한 이벤트였다. 정명훈 지휘자의 피아노 연주, 정호승 시인의 시낭송도 있었다.

정 감독이 무대에서 노래를 하기로 결심한 건, 동갑내기(1953년생) 신 회장의 설득 때문이었다. 작년 6월부터 교보생명은 보험 가입 고객에게 설계사들이 다시 찾아가 그동안 사고를 당하지 않았는지, 마땅히 받아야 할 보험금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챙겨주는 '평생든든 서비스'를 도입해 고객 2만명에게 보험금 105억원을 찾아줬다. 이 서비스를 광고하는 방송 CF의 모델이 바로 정 감독이다. 정 감독의 교보생명 CF 출연은 그가 운영하는 비영리단체 '미라클 오브 뮤직'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기금은 음악을 통한 각종 자선 활동에 쓰이고 있다.

신 회장은 교보생명 CEO로서 오랫동안 보험 계약을 유지해 준 고객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다 정 감독에게 듀엣 공연을 제안했고, 정 감독도 흔쾌히 승낙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있다가 가업을 이은 신 회장은 대학 시절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며 쌓은 기타와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다. 정 감독은 "2010년 내가 부산 소년의 집 관현악단을 이끌고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할 때 부족한 경비를 신 회장이 도와준 것이 (서로 알게 된) 인연이 됐다"고 말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두 분이 듀엣곡으로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고른 데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버팀목이 되고, 음악을 통해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