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선도 저비용 항공 시대… 동북아 승객 점유율 10%(8월)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에서도 전 세계 항공 여객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저비용 항공사(LCC)의 시장 확대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에서의 저비용 항공사 약진은 더욱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동북아시아의 경우 지난 8월 저비용 항공의 분담률이 9.7%로 지난해 평균인 6.8%보다 3% 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매년 완만한 성장세를 기록하던 저비용 항공 시장이 올해 급성장한 주요 요인으로는 제주항공과 진에어, 에어부산 등 우리나라 저비용 항공사들의 노선 확대와 일본 저비용 항공사들의 시장 참여가 꼽힌다. 일본의 경우 올해 피치항공과 에어아시아 재팬, 제트스타 재팬 등의 저비용 항공사가 속속 취항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본항공(JAL)과 전일본공수(ANA)를 제외한 항공사들이 국내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배 이상인 22%로 늘어났다.

◇기존 항공사들 주도로 저비용 항공사 설립 러시

최근 새로 설립된 저비용 항공사는 대부분 기존 항공사가 중심이 된 자회사 형태로 설립되고 있다.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진에어, 아시아나항공이 최대 주주(지분 46%)인 에어부산 형태의 저비용 항공사가 대표적 사례다. 에어아시아 재팬·에어아시아 필리핀·에어아시아 싱가포르처럼 같은 브랜드로 범위를 넓혀가기도 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ANA가 참여하는 피치항공이 문을 열었고, ANA와 에어아시아가 공동으로 설립한 에어아시아 재팬, JAL과 호주 콴타스 항공이 참여한 제트스타 재팬이 속속 시장에 참여했다. 싱가포르항공 역시 스쿠트를 설립해 지난 6월 싱가포르~호주 노선 운항을 시작했다. 10월에는 일본~싱가포르 노선도 개설할 계획이다.

중국 항공사들도 저비용 항공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중국의 3대 항공사 중 하나인 동방항공은 내년 초 호주 콴타스항공과 손잡고 저비용 항공사인 제트스타 홍콩을 선보일 계획이다. 제트스타 홍콩 역시 중국·한국·일본 등을 잇는 단거리 비행이 주력 노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태국의 대표적인 항공사인 타이항공도 지난 7월부터 타이스마일이라는 저비용 항공사를 설립해 마카오·홍콩 등 인기 단거리 노선 등을 겨냥하고 있다.

기존 대형 항공사들이 앞다퉈 저비용 항공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비행시간 4~5시간 이내의 중·단거리 노선이 급격히 저비용 항공사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비용 항공사가 일찍 도입된 유럽의 경우 국제선 수송실적 1위와 3위가 모두 저비용 항공사다. 더구나 1위인 라이언에어의 지난해 국제선 수송 인원은 7100만명으로 2위인 루프트한자(4400만명)와 큰 격차를 보였다. 미국의 경우에도 국내선 수송에서 저비용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압도적인 1위다. 이런 세계적 흐름이 아시아권으로도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저비용 항공사들의 급성장에 비해 기존 항공사들은 성장 부진을 겪고 있다. 특히 저비용 항공사들이 각국에서 하나둘씩 생겨남에 따라 중·단거리 노선에서의 고객 감소가 불가피해졌다. 그렇다고 항공사 입장에서 고수익 노선인 단거리 노선을 포기할 수도 없는 일.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저비용 항공사를 모델로 하는 자회사 설립인 것이다. 한 국내 저비용 항공사 관계자는 "시장을 장악했던 기존 대형 항공사들이 저비용 항공사들의 시장 공세에 맞서 자신들의 영역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새로운 저비용 항공사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아시아권에서는 최근 풍부한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높은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는 중동계 항공사(에미리트항공·카타르항공·에티하드항공)들의 공세가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싱가포르 항공이 저비용 항공사를 설립한 것이 대표적 사례. 싱가포르항공의 주 수익원은 유럽~아시아, 유럽~호주를 연결하는 장거리 노선이었지만, 최근 급성장한 중동계 항공사들이 동일한 구간을 대거 운영함에 따라 싱가포르항공이 저비용 항공사 설립에 나서게 됐다는 분석이다. 중동계 항공사의 공세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경유지가 싱가포르에서 두바이 등 중동 지역으로 바뀐 데다 중동계 항공사들이 장거리 중심의 전략을 구사하자, 싱가포르 항공은 이에 맞서 가격 경쟁력이 있는 중·단거리 위주의 저비용 항공사를 세웠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잇따라

최근 국내 항공업계의 가장 큰 뉴스는 일본과 중국이 항공 자유화 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비록 일본의 나리타와 하네다 공항,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공항 등 주요 공항은 항공자유화 대상에서 제외되긴 했지만, 단거리 국제노선 확대가 절실한 신생 저비용 항공사에는 엄청난 혜택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일본의 항공사들은 자격만 갖추면 노선별로 제한 없이 자유로운 취항이 가능해진 것이다. 지난해부터 대거 생겨난 일본 저비용 항공사로서는 큰 성장동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일본은 전용 터미널까지 만드는 등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쏟고 있다. 오사카의 신간사이 국제공항은 최근 저비용 항공 전용 터미널을 만들어 10월 문을 열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저비용 항공사 이용객이 지불해야 하는 공항 이용료는 국제선의 경우 현재 2650엔에서 1500엔으로 43%나 떨어졌다. 저비용 항공사들이 기존 항공사보다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이다. 나리타 공항 역시 저비용 항공 전용 터미널을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지난 2월 대표적 황금 노선으로 꼽혔던 김포~대만 쑹산 노선을 저비용 항공사인 티웨이항공과 이스타항공에 배분하는 등 저비용 항공사 지원에 나섰다. 당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모든 항공사가 김포~쑹산 노선에 군침을 흘렸지만 정부는 저비용 항공사의 자생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저비용 항공사들에 노선을 배분했다.

☞저비용 항공사(Low Cost Carrier)

항공 수요 증가와 항공 자유화 확대로 나타난 항공사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승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최대한 줄이고 운영비용 절감을 통해 기존 항공사보다 저렴한 항공 요금을 받는 항공사를 일컫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