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편지] 일흔하고 여섯에… 지리산 둘레길 700리 걸어서 한 바퀴

지난 7월 초 지리산 둘레길 700리(274㎞) 전 구간을 8박9일 동안 혼자 걸었다. 나 홀로 산행을 고집한 것은 '묵상산행(默想山行)'의 마음으로 나만의 자유로움과 산중 고독까지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리산 둘레길은 3개도, 5개 시·군(남원 함양 산청 하동 구례) 100여개 마을을 이어주며, 예부터 산자락 주민들의 순박과 애환이 녹아 있는 '역사 문화의 길'이기도 하다. 지리산은 그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믿음의 영산(靈山)이며, 또한 어머니 젖가슴처럼 포근한 산이다. 지리산 가까이서 나고 자란 내게는 둘레길 모든 구간을 걸어 보는 것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나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중 하나였다. 76세 늙은이의 오기나 무용담을 채우기 위한 도전이 아니라, 그동안 살면서 쌓인 부끄러운 '마음의 쓰레기'를 반추하고 털어내는 기회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어떻든 매일 아침 6시면 출발했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를 듣고 짙푸른 나무와 풀을 보면서 그들과 친구가 되기도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길섶 나뭇가지는 나를 반겨 주는 손짓이 되고, 눈앞에 펼쳐진 저 푸름은 '초록 바다'가 되어 물결을 일으키며 내 발길에 닿는다. 그러나 지리산 둘레길이 그리 한가롭지만은 않다. 티베트의 '라사'를 향해 가는 오체투지(五體投地)의 고행 순례자에 비견할 순 없겠지만, 천둥이 치는 폭우 속을 혼자 걸었던 제1구간(주천~운봉), 헉헉 숨을 몰아쉬며 제7구간(어천~운리)의 웅석봉을 오르던 고행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 능선이 바로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에 나온 달뜨기고개다. "사람마다 일정한 고통을 타고난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이 고통을 언젠가는 겪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며, 그 고통을 받아들일 때 극기심(克己心)이 생기는 법이다. 힘들다고 투덜대는 이 순간이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순간이 아닌가? 요즘 서점가에 가면 마음을 달래 준다는 힐링(healing) 도서들이 베스트셀러다. 대개 욕심을 줄이고, 마음을 비워 느리게 살라고 한다. 그러나 둘레길을 걸으며 산행의 고통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키워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전 구간을 돌아 출발지인 '둘레길 하동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어린애처럼 기뻐했다. 더욱이 '지리산 숲속친구들'이란 둘레길 완주 인증카드는 내게는 훈장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둘레길 답파로 내 가슴 속에 한 그루 푸른 나무를 심었다.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산천과 친구가 되어 그들을 닮아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