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골프장서 시민 초청 '가곡의 밤'

지난 6일 오후 7시 20분 경북 경산시 진량읍 대구컨트리클럽 동코스 1번 홀. 소나무와 연못 등이 어우러진 널찍한 잔디밭(페어웨이) 한가운데 무대가 설치됐고, 그 앞엔 주민 등 1500여명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을 맞잡은 채 잔디밭을 거니는 노부부와, 기념사진을 찍는 가족들도 보였다. 대구컨트리클럽 우기정(67) 회장이 2004년부터 매년 자비 수천만원씩 들여 열고 있는 '가곡의 밤' 행사를 찾은 시민들이었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행사를 총 지휘하는 테너 박범철(54)씨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관객들이 함께 노래 부르는 것으로 음악회는 시작됐다. '별' '오빠 생각' '비목' 등의 반주가 연이어 흘러나오자 1500여명은 일제히 손전등으로 악보를 비추며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최두석(62·대구 동구)씨는 "골프장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 어릴 때 불렀던 노래들을 다시 부르니 옛 생각도 나고 정말 기분 좋다"고 했다.

지역 가곡아카데미 소속 40∼70대 회원 50명으로 구성된 남녀 합창단 4개 팀과 전문 성악가 2명의 공연이 이어졌다. 의사·사업가·교수·주부 등 갖가지 직업의 아마추어 성악가들은 이날만큼은 검은색 턱시도와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입고 지난 3개월간 준비한 노래 솜씨를 뽐냈다.

2시간여 지나 공연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우기정 회장도 무대에 올라, 소프라노 강혜정(34)씨와 함께 '천년의 그리움'을 불렀다. 우 회장은 이어 부인 심성은(66)씨와 짝을 이뤄 다른 부부 6쌍과 함께 '그대 그리움' '망부석'을 들려줬다. 이 무대에 남편과 함께 오른 여미량(52)씨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다 함께 노래 부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고 했다.

우 회장은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문화·예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행사가 어느덧 9년째를 맞았다"며 "초창기 400명 남짓했던 관객 수가 어느덧 1000명을 훌쩍 넘었다"고 했다. 골프장 측은 행사 직전 참석자 전체에 뷔페식 저녁을 무료로 제공하고 기념품(손전등)도 나눠줬다.

우 회장은 부친인 고(故) 송암 우제봉(1919∼2004년) 선생이 대구·경북에 최초로 설립(1972년)한 골프장을 이어 받은 뒤 국내 최초의 골프장학재단(송암재단)을 설립하고 사단법인 한국골프장경영협회를 이끌며 크고 작은 봉사 활동을 해왔다. 2004∼2007년 국제라이온스협회 국제이사 및 한국라이온스연합회장, 대한민국 문화홍보외교사절을 역임하며 회원들과 함께 캄보디아·태국·필리핀에 학교를 지어줬고, 중국·우즈베키스탄·몽골에서 의료봉사 활동도 펼쳤다. 2005년엔 직접 평양을 방문해 80억원을 들여 지하 1층·지상 3층의 현대식 안과병원을 지어주고 63종의 의료장비도 지원, 백내장 등을 앓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다.

2005∼2011년엔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 회장을 맡아 지적발달 장애인들과 함께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지역 사회를 위해 초등학생들의 봄·가을 소풍 및 백일장 장소로 골프장을 개방하고,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이런 공로로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