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올림픽 5위', 그 어두운 그림자

어느새 4주가 흘렀다. 런던올림픽과 함께 울고 웃었던 '한여름밤의 꿈'은 끝났다. TV 연예 프로그램이나 토크쇼에 나오는 올림픽 스타들을 보면서 그때의 감동을 되새김질하는 것도 슬슬 무덤덤해져 가는 느낌이다.

돌아보면 우리 국가대표 선수단은 런던올림픽에서 정말 엄청난 일을 해냈다. 44개의 세계신기록과 117개의 올림픽신기록이 쏟아진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금 13, 은 8, 동 7개로 종합 5위에 올랐다. '금메달 10개로 종합 10위 이내에 들겠다'는 당초 목표를 너끈히 넘어섰다. 한국을 앞선 국가는 미국·중국·영국·러시아뿐이다.

하지만 세계 5위라는 달콤한 열매에 대한 해석과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선 "대한민국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줬다" "국운(國運) 상승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칭찬에 열을 올린다. 다른 쪽에서는 "덴마크나 노르웨이 같은 복지국가들은 메달 순위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엘리트 스포츠 지상주의를 경계한다.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은 아무리 칭찬을 해도 부족할 정도로 많은 땀을 흘렸다. 그들의 자기 절제와 엄청난 훈련량은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한쪽에선 "그게 다 연금과 병역 혜택의 힘"이라고 폄하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 당장은 "메달리스트들에게 병역 특례나 연금 같은 혜택을 주지 말자"는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또다시 정치인이나 거물급 인사의 병역 논란이라도 불거지면 운동선수들을 물고 늘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엘리트 스포츠 지상주의(至上主義)에서 벗어나 생활스포츠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4년에 한 번 국민에게 기쁨을 준다는 이유로 극소수 엘리트 위주의 스포츠 정책을 펴서는 안 될 일이다. 학생들 체력은 저질(低質)이 되어가고 있는 판인데,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를 들어 점심시간에도 교장 선생님 재량으로 '축구 금지령'을 내리는 현실은 뜯어고쳐야 한다는 얘기다.

몇 해 전부터 생활 체육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장기적인 계획보다 땜질처방이나 전시용 행정으로 흐른 경우가 수두룩하다. 각급 학교와 체육공원에 깔아준 인조잔디에서 발암물질이 과다 검출돼 한바탕 난리를 친 게 대표적 사례다. 엘리트 스포츠도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학원 스포츠를 정상화한다는 명목으로 무리하게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바람에 상당수 지도자가 "유망주들의 씨가 말라버릴 지경"이라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

국내 개최 예정인 국제스포츠 행사들도 문제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제대로 된 청사진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강원도 일부 지역 주민들이 "경기장을 우리 고장으로 옮겨달라"며 서명 운동을 벌여 마찰을 빚고 있다는 걱정스러운 소식만 들려온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난으로 경기장을 제대로 지을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다.

정부와 대한체육회 관계자들은 "런던올림픽에서 다양한 종목에 걸쳐 기대보다 많은 메달을 땄다"며 흡족해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체육계 현장에서는 촛불이 사그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차례 크게 불꽃을 일으킨 '회광반조(回光返照)'일지도 모른다며 걱정하고 있다. '올림픽 5위'라는 화려한 불꽃 뒤에 드리운 긴 그림자를 '높은 양반'들만 보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