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창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내 상상력의 원천은 만화경이었다."(월레 소잉카)

"이제 고급 권력이 지식을 독점하던 '비밀의 시대'를 지나 대중이 주인인 '공개의 시대'가 왔다."(르 클레지오)

두 노벨 문학상 작가의 강연과 대화의 꽃이 천년 고도 경주에서 피었다.

'문학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 문인의 축제 제78차 국제 펜(PEN) 대회가 10일 경북 경주에서 세계 87개국 800여명의 문인이 참석한 가운데 막을 올렸다. '문학, 미디어 그리고 인권'을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의 첫날 주인공은 노벨 문학상 작가인 나이지리아 시인 월레 소잉카(78·1986년 수상)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72·2008년).

소잉카의 기조 강연 제목은 '마법의 등불(The Magic Lantern)'이었다. '마법의 등불'은 작가들의 창조성과 호기심을 상징하는 소잉카식 비유. 시인은 연단에 올라 준비한 원고를 제쳐놓고 자유분방하게 강연했다. 소년 소잉카에게 첫 '마법의 등불'은 '만화경'이었다고 했다. "거울과 색종이가 만들어내는 온갖 무정형의 도형들에 홀리듯 빠져들었던 소년 시절"이었다는 것. 중·고교 시절에는 교실에서 커튼을 쳐놓고 관람했던 영사기의 영상들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산·바다·폭포 등 이미 모양과 형태가 정해진 사진 속 풍광들은 소잉카에게 그리 매혹적이지 않았다는 것. 상상력을 거세한, 이미 정해진 사진들이었다. 시인은 "만화경은 문학, 영사기는 영상 미디어"라며 문학이 지니는 고유의 상상력을 예찬했다.

그는 "호기심과 창조성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반(反)지성'"이라고 명명했다. 주로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 '권력'이 행사하는 금기와 검열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러고는 철학자 데카르트의 명제에 빗대 "나는 창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미리 준비한 원고를 차분히 읽은 클레지오는 '소통은 자연스러운 것(Communication is nature)'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작가는 종이책이 존재하지 않았던 고대, 구텐베르크 은하계로 표현되는 책의 시대, 그리고 이제 종이책이 점점 줄어들고 전자책이 득세하는 최근의 흐름을 꼼꼼하게 짚었다. 하지만 책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의 어린이들이 가상의 공간에 만들어진 도서관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까지도 읽을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면 참으로 기쁘다"고 했다.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 존 레스터 소울(Saul) 국제 펜 본부 회장은 이 단체의 가장 중요한 존재 목적 중 하나가 '표현의 자유'임을 강조했다. 올해 펜 대회에서는 탈북 문인 28명으로 구성된 '망명 북한 작가 펜센터'가 회원으로 가입하게 된다. 국제 펜에는 현재 114개국 143개 센터가 가입돼 있으며, 탈북 작가들의 가입으로 144개 센터로 늘어난다.

소울 회장은 "북의 작가들은 표현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탈북 작가들이 '망명 북한 작가 펜센터'를 만드는 것"이라며 "14일 열리는 총회에서 가입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울 회장은 또 "망명 중국 펜센터에 소속된 지아오(Jiao) 박사가 단지 경주 펜 대회에 참석하려 한다는 이유만으로 중국 정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다"며 "현재 850명의 전 세계 작가가 정부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구금되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