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현의 문학산책] 母性을 지구촌에 일깨워주는 ‘한국적 스토리 텔링’

2000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이 이탈리아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영화 '섬'은 살인을 저지르고 외진 낚시터로 도망친 남자가 호수 한복판에 작은 집처럼 떠있는 좌대(座臺)에 숨어 사는 이야기다. 그해 영화제에서 수상하진 못했지만, 최고의 화제작이 되기엔 충분했다. 남자 배우가 낚싯바늘을 목구멍 너머로 꾸역꾸역 삼키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영화제 상영관에서 '섬'을 보던 관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영화 상영이 갑자기 중단됐고, 충격으로 기절한 한 여성 관객을 남자들이 들쳐 메고서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그때 영화제 취재를 하러 갔던 나는 영화 '섬'이 빚어낸 아비규환의 현장을 지켜봤다. 객석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스크린에서 영화가 계속 돌아갔다. 이번엔 영화 속의 여자가 다리를 쭈그리고 앉더니 낚싯바늘을 움켜쥐고 치마 사이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영화감독을 향한 분노의 비명을 내질렀다. 다행히 영화는 곧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영화관 전체에 '휴~' 하는 안도의 한숨이 가득 찼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현기증에 시달리다가 지상에 무사히 내린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김기덕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간 적이 없다. 김기덕은 '섬' 이후 2004년 베를린과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잇따라 감독상을 받아 세계가 인정하는 예술가가 됐다. 비평가들은 그가 만든 영화의 예술성을 치켜세우면서 '잔혹'과 '엽기'란 평을 빼놓지 않았다. 나는 굳이 돈을 내고 고문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해외에서 격찬을 받은 한국 예술영화에선 '폭력 코드'가 빠지지 않는 것일까.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가 날것 그대로의 폭력을 보여주고,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시'에선 유괴 살인과 성폭행이 스토리의 발단이 되는 역할을 했다. 어느 영국인 비평가는 "총도 거의 나오지 않는 한국 영화는 잔인하고 짜증스럽다"면서 "그건 전쟁과 분단·독재로 이어진 한국인의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도 "한국 소설과 영화의 공통점은 폭력적이라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그는 한국 소설가와 영화인들이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폭력에 예술로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황석영을 비롯한 한국 작가들의 리얼리즘 소설, 박찬욱과 이창동의 영화를 높이 평가하기에 그런 말을 했다.

스토리 텔링을 바탕으로 한 예술이 현실을 달콤하게 포장하라는 법은 없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에선 대학생이 노파를 도끼로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다. 그런 탓에 러시아의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할 수는 없다. 냉전 시대에 소련의 압제를 겪은 동유럽 작가들도 러시아 문학을 경멸하진 않았다. 그들은 인간과 삶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 도스토옙스키 덕분에 러시아 문학을 찾아 읽었고, 러시아인의 정신을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32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15개가 넘는 나라에서 번역됐다. 이 소설은 한국인의 문화 코드에서 '모성(母性)'이 지닌 의미를 우리와 다른 언어 공동체 사람들도 공감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줬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을 찾아 성모(聖母)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상(像) 앞에서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며 기도를 올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한국적 어머니가 피에타상과 겹쳐지면서 인류 공통의 모성 상징으로 확대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신경숙은 실제로 이 소설을 일단 쓰고 난 뒤 직접 피에타상을 보고는 끝부분을 추가했다고 한다. 그는 출간 직후 "피에타상에서 성모가 아들보다 젊고 아름답게 조각된 점에 끌렸어요. 그게 엄마의 본질이라고 봐요"라고 했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 '피에타' 촬영을 마친 뒤 아들보다 젊어 보이는 성모 마리아에 대해 한마디 했다. "정숙한 여인은 더디 늙는 법입니다." 영화 '피에타'는 폭력에 찌들어 추악한 현실을 구원하는 힘을 모성(母性)에서 찾았다는 평가를 받아 올해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신경숙 소설에 이어 김기덕 영화가 피에타가 지닌 영원한 모성의 상징을 활용해 지구촌에서 보편적 공감을 얻은 셈이다. 원래 한국 문학에선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노래한 작품이 유난히 더 많았다. 신경숙과 김기덕 덕분에 모성을 통한 인간 구원이 지구촌에서 한국적 스토리 텔링의 특징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영화 '피에타'를 보지 않았지만, 영화평을 보니 여전히 눈 뜨고 보기엔 불편한 장면이 없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옛날에 비해 많이 부드러워졌고, 성숙한 감독의 시선이 느껴진다고도 한다. 이 영화를 보러 갈까 말까.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김기덕 감독은 열다섯 살 때부터 서울 청계천에서 일하며 돈의 노예가 된 현실을 몸으로 겪은 기억을 이 영화에 쏟아부었다고 했다. 이 영화의 결론은 '신(神)이여, 우리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한다. 자비를, 자비를, 자비를 베푸소서. 그 말을 주문처럼 외우다 보니 마음 한편이 힘없이 허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