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72] 백화점과 함께 '데파트 껄' 등장

1930년 10월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지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건물)의 출현으로 백화점 시대가 열리면서, 사람들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든 건 높은 건물과 수많은 상품만이 아니었다. 물건을 사든 안 사든 모든 손님을 상냥한 미소와 낭랑한 목소리로 맞는 여점원들이었다. 김기림(金起林)은 '도시 풍경'이라는 글에서 "최저가(最低價)로, 아니 때때로는 무료로 얼마든지 제공하는 여점원들의 복숭아빗의 애교- 이것들은 쎈씨불한 도회인의 류동하는 마음에로 향하여 버려진 데파트멘트의 말초신경"이라고 썼다. 그는 또 "층층대를 올라가는 밋근한 녀자의 비단양말에 싸힌 다리와 높흔 '에나멸'의 구두 뒤축을 하염없이 처다보고 서 잇는, 수신(修身) 교과서를 니저버린 중등교원도 잇다"고 꼬집었다(1931년 2월 21일자). '백화점녀' '데파트 껄' '숍껄'등으로 불렸던 여점원들은 단숨에 젊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직업이 됐다. 경성의 정자옥(丁子屋)백화점이 여점원 '약간명'을 모집한다고 공고하자 600여명이라는 폭발적 지원자가 몰릴 정도였다(1933년 8월 19일자).

그러나 화려해 보이는 그녀들의 일은 무척 고된 것이었다. "아츰 여덜시 반부터 밤 열한시까지 장창 서잇서야 하고… 주임과 감독의 독사 갓흔 눈초리를 밧아야" 했다(1932년 1월 21일자). 1933년엔 평양 모 백화점 여점원 31명이 오전·오후에 교대근무를 하게 해달라며 동맹파업을 벌여 하루 영업이 중단되기도 했다(1933년 7월 14일자).

더 힘든 건 손님에게 시달리는 일이었다. 화신백화점 여점원은 "신식 부인네들은 정가대로 가져가지만 구식 아주머니들은 의레 갑슬 깍끄려 들어 진땀을 빼요"(1939년 4월 9일자)라고 밝혔다. 빼놓을 수 없는 건 일부 남자 손님들의 짓궂은 태도였다. 여점원을 구경하려고 백화점에 오는 남자들도 많았다. 한 여점원은 "물건은 안 보고 내 얼골만 보면서 이를 테면 점잔케 히야까시(희롱)를 하지요…"라고 고충을 말했다(1928년 12월 2일자). 처자까지 있는 30세 사나이가 경성시내 모 백화점 여점원에 반해 회사돈을 횡령한 사건이 사회면에 보도되기도 했다(1936년 12월 15일자). 화신백화점 훈련부장은 여점원들 미모 때문에 벌어지는 남녀 문제가 골치아픈 일임을 토로했다. 그는 "그런 일(남자 손님과의 문제)이 있을까 봐서 미리 예방하느라고 아침저녁으로 무한히 경계합니다"라며 남녀 점원들 사이의 연애 문제도 막으려고 점내에서는 "둘이 서로 마주서는 것도 금한다"고 밝혔다(1936년 3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