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과 스케치북조차 없었던 이중섭… 그는 연필로 못으로 어디에든 그렸다"

"그는 판잣집 골방에 시루 속 콩나물처럼 끼어서도 그림을 그렸고, 부두에서 날품을 팔다가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에서도 그렸고,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종이, 또는 담뱃갑 은지(銀紙)에도 그렸고…."

요절한 천재 화가 '이중섭(李仲燮·1916~1956)'을 기리는 '2012 이중섭과 서귀포' 세미나가 11일 저녁 서귀포시와 조선일보사 공동 주최로 서귀포KAL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 자료집 첫머리에는 이중섭과 절친했던 시인 구상(具常·1919~2004)이 이중섭을 회고하며 남긴 글이 실렸다.

"(…)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과 송곳으로도 그렸고, 먹을 것과 잘 곳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부산 서귀포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을 떠돌면서도 그리고 또 그렸다."

청중으로 꽉 찬 세미나장이 잠시 숙연해지자 미술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윤동희 북노마드 대표가 '이중섭, 그 갸륵한 시간'이라는 주제로 세미나의 문을 열었다.

윤 대표는 '외로운 어린아이' 이중섭에서 시작해 '서귀포'에 주목했다. 서귀포는 이중섭이 부산을 떠난 후 1951년 약 1년간 머물던 곳이다. 당시 이중섭과 부인, 두 아들이 살던 4.6㎡(1.4평)짜리 초가 단칸방이 아직도 남아 있다. "4·3사건 등으로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던 제주에서 이중섭은 '아이들과 게, 물고기'라는 자신만의 소재를 건질 수 있었습니다."

올해로 15회째를 맞는 이날 세미나에는 우근민 제주도지사, 김재봉 서귀포시장, 마쓰이 사다오 제주 일본국총영사관 총영사, 유희영·최경한 이중섭 미술상 운영위원, 이왈종 화백,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 이중섭의 조카 손녀 이지연·이지향씨, 김문순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이사장 등 각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