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순간 떠올랐다, 청계천서 일하던 열다섯 살의 나"

"다시 영화를 하게 해달라." 영화 '피에타'로 69회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52) 감독은 11일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주연배우 조민수(47), 이정진(34)과 함께 가진 수상 기념 귀국 기자회견에서 대뜸 이렇게 말했다. "피에타는 (나에 의해) 맛있게 먹고 배설된 X이다. 그 X이 거름이 돼 다른 식물을 키우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다. 상영관이 적으면 관객들이 극장에 요구하면 되고, 그게 안 된다면 그 역시 피에타의 운명"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자신에게 많은 상영 기회를 주지 않은, 거대 투자배급사·멀티플렉스가 주도하는 현 한국 영화산업 구조를 이렇게 비틀고 비판한 것이다.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김기덕 "어쩌면 이 상에 가장 기뻐하실 분들이 소리 없이 영화를 지지해주신 관객들이 아닐까? 외국에 나가면 '당신 영화는 한국에선 인기가 없고 유럽에서만 인기 있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아니다. 한국에도 내 영화를 좋아해 주는 팬들이 있다'고 진심으로 말해왔다."

조민수 "영화가 극장에 많이 안 걸려 있다고 하더라. 영화를 봐야 황금사자상을 왜 받았는지 알 텐데…."

―피에타에 대한 현지 반응은.

김 "베네치아 어딜 가나 '당신 영화가 황금사자상 감'이라 하는데 시상식 전날은 정말 부담이 컸다. 안타까운 건 (국내 상영) 극장이 많지 않다. 좌석점유율을 봤더니 피에타가 40~60%더라. 그 정도면 회차를 늘리는 게 보통인데, 15% 미만인 영화가 기록을 내기 위해 안 빠져나가고 있더라. 그게 도둑들이 아닌가 생각한다."(현재 영화 '도둑들'이 전체 흥행기록 1위를 노리고 있다)

―'피에타'는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영화인가.

김 "극단적 자본주의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자체가, 인간과 가족이 돈 때문에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결론은 그런 비극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줄곧 구원의 의미를 견지해왔다. 구원은 감독에게 어떤 의미인가.

김 "현실에서 서로를 존중하면서 신뢰하는 것. 열등감으로 자라는 패배자들이 적어야 하고, 기득권도 부르주아로 오해받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사이의 믿음과 이해, 용서가 구원이라 생각한다."

―관객친화적으로 바뀐 계기는.

김 "(배우 이나영이 자살 장면을 찍다 죽을 뻔한) '비몽' 이후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제가 가진 욕심, 애정 이런 것들이 나를 시험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그게 다 약이었고, 피에타를 만들 수 있는 동력이었던 것 같다. 지금 다음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그것도 대중적이 될 것 같다."

김기덕 감독은 대답을 하다 "아무도 묻지 않을 것 같다"며 자신의 시상식 의상에 대해 설명했다.

"상의가 150만원짜리고, 바지가 60만원짜리다. 내가 큰 실수를 했다. 방송 프로그램 녹화를 가야 하는데 헐렁한 반바지에 땀에 전 티밖에 없었다. 일찍 나가 헤매다 보이는 옷가게에 들어갔다. 속으로 '10만~20만원 하겠지'하며 살 것처럼 골랐다. 그런데 가격을 듣고 큰일 났다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샀다. 이 옷으로 1년 동안 영화제에 가야 한다. 이 신발도 칸 영화제 끝나고 산 거다. 1년째 하루도 안 벗었다. 어떤 분들은 저녁 먹으러 갈 때도 이보다 비싼 옷 입지 않나. 1년간 세계 영화제를 다녀야 하는데 용서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상 받는 순간 누가 떠올랐나.

김 "청계천에서 무거운 구리 박스를 들고 다니던 열다섯 살의 내 모습이다."

―10일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선거운동에 참여할 계획이 있나.

김 "문재인씨가 내 수상에 대해 장문의 멘트를 주셨다. 답장을 안 하면 버릇없는 거 아닌가. 여기까지다. 내가 선거 캠프까지 가면 나의 건강하지 못한 삶으로 그분께 피해만 줄 거 같다."

―조민수씨는 여우주연상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조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올 때 제 손을 잡아주는 분들의 따뜻함과 '좋은 점수였는데 작품이 너무 훌륭해서 황금사자상을 줬다'는 말에 아쉬움이 누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