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구의 세상은 게임이다] 신비주의 마케팅 효과는 잠깐… 소비자, 곧 품질差 알게돼

대통령 선거가 불과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여러 후보의 구체적인 정책 공약은 아직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출마 여부조차 불확실한 경우도 있다.

정치인이란 아주 작은 기회만 생겨도 유권자에게 자신을 홍보하고자 하는 것이 본성인데, 대선을 얼마 앞두지 않은 지금까지도 일부 후보들은 자신과 자신의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데 아주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얼핏 역설적으로 보이는 이런 대권 후보들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경제학 이론이 바로 '시그널링 모델(signalling model)'이다.

◇우수 품질 적극 알리면 판매량 증가…세퍼레이팅 균형

경제학의 시그널링 이론은 주로 상품 판매자가 자기 상품의 우수한 품질을 소비자에게 알려서 판매량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이때 품질이 우수한 상품을 판매하는 측에서는 자신의 우수한 품질을 소비자에게 홍보하려고 노력하겠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판매하는 측에서는 자신의 품질을 알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품질이 우수한 자동차 판매자는 시운전을 해보도록 한다든지, 장기간 무료 수리 등의 방법으로 품질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 할 것이고, 음식물 판매자는 시식 등을 통하여 소비자가 구매하기 전에 자신의 우수한 품질을 알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소비자들이 높은 품질의 상품과 낮은 품질의 상품을 완벽하게 구분할 수 있는 상황이 일어난다면 경제학에서는 이를 '세퍼레이팅 균형(separating equilibrium)'이라고 부른다.

◇판촉 소극적으로 하면 품질 구분 어려워…풀링 균형

반면,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판매하는 측에서는 괜히 시운전이나 시식을 허용했다가는 판매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판촉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무료로 수리해 주는 서비스 기간도 너무 길게 잡았다가는 손해가 날 것이니 함부로 해 주지 못할 것이다.

이때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사실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먼저 객관적으로 다른 상품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이다. 어떤 자동차의 품질이 나빠서 대개 1년이면 고장이 난다고 해 보자. 따라서 이 자동차의 낮은 품질이 알려지면 아무도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가 이런 낮은 품질을 숨긴다면, 소비자들은 평균적인 자동차라고 생각하고 구매할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가 다양한 경우이다. 어떤 소비자는 연비가 좋은 자동차를 선호할 수 있고, 다른 소비자는 성능이 좋은 자동차를 선호할 수 있다. 만일 어떤 자동차가 연비는 좋지만 성능은 떨어진다면, 이 자동차의 품질이 정확히 소비자에게 알려졌을 때 성능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은 아무도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동차의 품질이 소비자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면, 자동차의 품질에 대해 정보를 모르는 소비자들은 평균적인 기대감에 자동차를 구매할 것이기 때문에 연비를 따지는 소비자나 성능을 따지는 소비자 모두가 그 자동차를 구매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듯 판매자가 시그널을 보내지 않아서 소비자들이 상품의 품질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풀링 균형(pooling equilibrium)'이라고 한다.

◇기존 정치인에 실망한 상황에선 새 대선 후보가 능력·정책 숨겨도 평균 이상 평가

이런 시그널링 이론은 최근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각 후보의 전략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정책이 부족한 후보이거나, 일부 국민에게만 호응을 받고 다른 국민에게는 외면당할 수 있는 정책을 생각하고 있는 후보, 또는 가급적 정책 공표시기를 늦추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대선 후보들로서는 자신의 능력과 정책을 당장 알리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즉 풀링 균형 상태를 원하는 것이다.

특히 기존의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줘, 정치 소비자인 국민에게 이미 기준 미달의 낮은 품질의 상품으로 인식된 상태에서 새로 등장한 정치인으로서는 자신의 능력과 정책을 드러내지 않아도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기존 정치인과 다른 상품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는 반면, 베일에 가려 있음으로써 능력면에서는 다른 정치인과 비슷하지 않겠느냐는 국민들의 평균적인 추정을 끌어낼 수 있다.

◇소비자는 품질 차이 금방 알아봐…정치도 마찬가지, 능력 잘 알리지 않으면 의심

문제는 현실에서 자신의 능력과 정책에 대한 시그널링을 보내지 않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품질이 낮은 자동차 판매자의 경우 소비자에게 시승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품질을 숨기고 싶겠지만, 이런 전략은 한계가 있다. 고품질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경쟁사는 소비자에게 시승을 권할 것이고, 이 경우 영리한 소비자라면 시승을 허용하지 않는 자동차는 뭔가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세퍼레이팅 균형을 원하는 고품질의 판매자가 시그널을 하면 저품질의 판매자가 원하는 풀링 균형은 깨지게 된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 가운데 자신의 능력과 정책을 최소한으로만 홍보하는 신비주의 마케팅을 시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략적 행동이라기보다 시그널링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그널링 이론에 따르면 풀링 균형을 노리는 전략은 정치권에서도 오랫동안 효과를 보기 어렵다. 능력 있고 좋은 정책을 가진 후보라면 결국 적극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정책을 국민에게 시그널하려 할 것이므로, 시그널을 전혀 보내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보내려는 후보에 대해서는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유권자들이 결국 의심의 눈길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신비주의 마케팅과 충분한 검증기간 사이에 절묘한 타협점이 대선 몇 달 전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이 포인트를 놓치면 소비자인 국민들로부터 의심받을 수 있다는 게 시그널링 이론의 메시지다.

기업이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광고를 하듯이 정치인들도 국민에게 확실한 시그널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게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