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200장 낸 클래식 음반왕 "백건우 덕분"

21일 서울시향을 지휘하기 위해 내한하는 폴란드의 지휘자 안토니 비트(67·사진)는 음반업계의 숨은 실력자이다. 중저가 음반 레이블인 낙소스와 손잡고 지금까지 200여 장의 음반을 녹음해서 총 판매고만 500만장에 육박한다.

그가 음반업계의 총아로 부상하는 데는 피아니스트 백건우도 한몫 거들었다. 1991년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5곡)을 낙소스와 처음 녹음할 당시 협연자가 백건우였다. 비트는 "당초 음반사는 시장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2~3장의 음반을 시험적으로 녹음해보자는 입장이었지만, 프랑스 잡지 디아파종의 격찬을 받으면서 장기적인 협력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 뒤 비트는 20여년간 백건우와 18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했고, 백건우 역시 2003년 명문 음반사 데카를 통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녹음할 당시 그를 지휘자로 초대했다. 비트는 "백건우는 나와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이며 20세기 초반의 고전적 작품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가"라고 말했다.

비트는 학부 시절에는 법학을 전공했고, 작곡가 펜데레츠키를 2년간 사사했다. 그는 "언제나 논리적인 것에 매료됐기 때문에 법학 공부도 즐거웠다. 최소한 오케스트라의 복잡한 행정 문서는 이해할 수 있으니 도움이 된 셈"이라며 웃었다.

그는 1971년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했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카라얀을 보좌하기도 했다. 비트는 "카라얀은 휴식 시간에도 쉬지 않을 정도로 미친 사람처럼 온종일 일했다"고 기억했다. 비트는 폴란드 국립 라디오 교향악단을 17년간 이끌었고, 2002년부터 바르샤바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을 10년째 맡고 있다.

앞으로 녹음 계획을 묻자 그는 "지난달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을 마쳤고, 한 달 뒤에는 펜데레츠키의 신작 녹음에 들어가며, 드보르자크의 합창곡도 추진 중"이라며 말문을 닫을 줄 몰랐다. 그 순간, 이 폴란드 '음반 챔피언'의 미덕은 지칠 줄 모르는 성실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