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클리닉] (27) 개인형 퇴직연금

"고객님, 이번에 정부가 법을 바꾸면서 나온 신상품인데 소득공제도 되고 유리해요."

요즘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에 가면 들을 수 있는 금융상품 가입 권유다. 지난 7월 법률 개정 이후 새롭게 등장한 개인형 퇴직연금(IRP) 얘기다. IRP란, 개인이 자신의 노후 생활을 대비하기 위해 운용하는 일종의 바구니 계좌다. 예금·펀드·주가연계증권(ELS)·채권 등 다양한 상품들이 있어서, 가입자는 자신의 투자 성향에 따라 자유롭게 돈을 굴릴 수 있다. 그런데 IRP는 일종의 계좌(account) 개념이지만 0.3~0.8%의 수수료를 고정적으로 물어야 한다. 중도 해지, 계약 이전 비용이나 장기가입자 우대 혜택도 회사마다 천차만별이어서 무턱대고 가입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IRP가 아직 시행 초기여서 수수료 체계 등 정비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며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를 부과하는 곳에는 제도 개선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IRP 대전(大戰) 벌어졌다

IRP는 기본적으로 퇴직이나 이직을 계획 중인 직장인이 퇴직금을 수령하려면 꼭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퇴직·이직 계획이 없는 직장인도 미리 만들어 둘 순 있다. 잔액을 '0원'으로 해둔 채 나중에 퇴직금을 받을 때 꺼내서 활용하면 되고, 아니면 절세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권용수 삼성증권 팀장은 "IRP는 1년에 1200만원까지 개인적으로 넣고 운용한 다음 연금저축과 합산해 1년에 4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면서 "IRP는 연금저축과 똑같은 세제 혜택이 있으면서도 운용상품이 다양해서 향후 연금저축의 대항마로 떠오를 것"이라고 점쳤다. 다만 IRP는 주식 투자 비중이 40%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자에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김보승 한국투자증권 팀장은 "40~50대 회사원은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연금저축에 가입하려 해도 10년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며 "반면 IRP는 소득공제를 똑같이 받으면서 가입기간 요건이 없어 퇴직이 가까워오는 계층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은행·증권사·보험 등 IRP를 판매하는 58개 금융회사는 불꽃 튀는 고객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신한금융투자·미래에셋증권 등 4개사에서 1만명이 넘는 직장인들이 IRP 계좌를 텄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 A은행이 IRP 고객 80만명 유치를 목표로 직원 캠페인을 걸었다는 소문이 퍼졌다"며 "IRP는 소비자 입장에선 해지하면 손해가 큰 족쇄상품이지만 금융회사 입장에선 꾸준히 수수료를 챙길 수 있어 이익"이라고 말했다.

◇IRP에 숨은 불편한 진실 세 가지

IRP에 가입한다면 세 가지 사항을 체크해야 한다.

첫째, 봉이 김선달식 수수료다. IRP는 계좌를 트고 돈을 넣으면 최고 0.8%의 수수료가 매년 꼬박꼬박 떼인다. IRP에서 펀드 유형을 선택하면 수수료가 이중으로 나가게 된다. 이때 수수료도 지금까지 넣은 총 적립액이 기준이 되기도 하고, 혹은 1년 납입액이 기준이 되기도 한다. 중도 해지·계약이전 비용, 장기 가입자 우대와 같은 항목도 따져봐야 한다. 예컨대 A은행은 IRP 가입 후 중도 해지하면 1만5000원의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또 다른 B은행에선 공짜다.

둘째, 수익률 함정이다. 일반 창구에선 연 4%대 금리를 주는 상품을 찾기 힘들지만, IRP 계좌의 상품 중에는 아직도 4% 상품이 수두룩하다. 예컨대 C은행은 현재 창구에서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연 3.3% 안팎이지만 IRP 예금의 경우엔 연 4%다. 하지만 IRP는 고정수수료가 빠지기 때문에 연 4% 금리가 높다며 덥석 물어선 곤란하다.

셋째, 상품 구색이다. IRP는 채권, 펀드, ELS, 예금, 보험과 같은 다양한 상품을 취향에 맞게 골라 비빔밥 만들듯 쓱쓱 버무리는 상품이다. 회사별로 IRP에서 취급하는 상품이 전부 다르다. 노후 대비 자산운용에 관심이 많아 IRP를 만든다면 가입 전에 어떤 상품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