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확대 없는 美연준만의 돈 퍼붓기… 빠른 회복 힘들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13일 추가 양적 완화 등 경기 부양책을 내놓으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벤 버냉키(Bernanke) 연준 의장은 그러나 거의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이른바 '무제한 양적 완화'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시장은 연준이 기한과 규모에 제한을 두지 않고 주택담보증권(MBS)을 사들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번 3차 양적 완화는 프로그램의 기한을 고용 전망이 충분히 개선될 때까지로 했고, 성장의 목표치도 정해두지 않았다.

이번에 연준이 추가 양적 완화에 나선 것은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미국의 경제는 완만하게 회복하고 있고, 주택과 제조업 경기도 되살아나고 있다. 문제는 회복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점이며, 추가 부양으로 연준은 회복에 가속도를 붙이려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연준은 더 많은 일자리가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를 원한다.

◇주택시장 부양에 초점

양적 완화의 초점은 주택시장 부양에 맞춰져 있다. 버냉키는 "주택이 되살아나지 않으면 미국 경제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 주택 경기가 정점에 달했을 때 미국 일자리 8개 중 1개가 주택 관련 업종에서 만들어졌다. 주택시장은 역사적으로도 경제 회복의 주된 동력이었다. 부진한 주택 경기가 미국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자 버냉키 의장은 '총구'를 바로 이 주택시장으로 겨누기로 결정했다.

연준은 미국 국채 대신 주택담보증권을 사들이기로 했다. 이 증권을 연준이 사들임으로써 이 증권의 금리를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이 증권의 바탕이 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끌어내림으로써 주택 경기를 회복시키겠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침체된 경기를 살리는 일은 그토록 간단하지가 않다.

주택시장의 문제는 높은 금리나 유동성 부족이 아니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이미 사상 최저 수준이고, 은행엔 돈이 넘쳐난다. 문제는 금융 위기 이후 금융기관이 주택담보대출을 꺼린다는 사실이다. 조건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주택담보대출 신청자의 절반 정도가 대출 심사에서 탈락한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출 수는 있지만 은행이 돈을 빌려주도록 유도할 수는 없다. 은행이 스스로 대출을 늘리게 하려면 미래의 경제가 개선되리라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미국에 부족한 점이 바로 이 자신감의 부재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선 아마도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양적 완화를 통해 풀리는 돈은 1·2차 양적 완화에 비해 적은 편이다. 중앙은행은 1차 양적 완화를 통해 매달 약 1000억달러, 2차 양적 완화 때는 750억달러를 풀었다. 3차 양적 완화를 통해 연준은 매달 400억달러의 채권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물론 연준은 고용이 회복되지 않으면 채권 매입을 계속하겠다고 말해 전체 금액은 훨씬 늘어날 수 있다). 또한 1·2차 양적 완화의 효과가 미미했다는 사실도 추가 양적 완화의 효과에 대한 기대를 떨어뜨린다.

◇재정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아 효과가 제한될 것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필자를 포함한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는데, 이들은 5000억달러 정도의 양적 완화가 실업률을 단지 0.1%포인트 정도 떨어뜨리는 데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의 실업률은 현재 8%가 넘는다.

또한 과거 일본의 경험을 볼 때 통화정책 혼자서는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 통화정책은 반드시 세금 인하나 정부 지출 확대 같은 재정 정책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 안타깝게도 미국을 포함한 많은 선진국의 재정 정책은 세금을 올리고 재정 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긴축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고, 미국 의회는 긴축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할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3차 양적 완화가 미국 경제를 완만하게나마 성장시킬 수는 있지만, 경제 회복을 이른 시일 내에 불러오지는 못할 것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울러 양적 완화가 부자들만 돕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별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비난도 있다. 미국의 경우 소득 상위 20%인 사람들의 주택 소유 비율은 87%에 달하는 반면 하위 20%의 경우 37%에 불과하다. 3차 양적 완화를 통해 주택 가격이 올라가면 저소득층에보다는 고소득층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증시와 미국 수출이 큰 혜택

양적 완화를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곳은 주식시장이다. 주택과 마찬가지로 돈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주가가 오르면 부자들이 더 큰 이익을 보게 된다. 양적 완화는 또 원유, 금속 같은 원자재 가격을 올라가게 한다. 대부분 원자재 가격은 달러로 표시되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원자재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기름과 식료품 가격이 오르면 저소득층이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이런 모든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3차 양적 완화가 미국 경제에 확실히 도움이 되는 분야가 하나 있다. 달러 가치를 떨어뜨려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유럽과 중국의 경기 침체로 미국 수출이 고전하고 있을 때는 특히나 달러 가치의 하락이 큰 도움이 된다.

달러 가치가 낮아지면 유로존과 중국, 한국 등 미국의 무역 대상국들도 미국의 달러가 지나치게 자국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수출 경쟁력 강화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에 따라 이 나라들이 달러 약세에 대응해 각자의 방식대로 양적 완화에 나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낮추고 채권을 사들이면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절차에 이미 돌입했다.


☞ 양적 완화(量的緩和·quantitative easing)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화폐를 찍어 국채 등의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자금을 대량 공급하는 통화정책을 말한다. 기준 금리가 제로(0)에 가까운 상황에서 더 이상 금리를 낮추기 어려울 때 쓰는 이례적인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