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74] '일확천금의 꿈' 인천 米豆시장

"인천 미두(米豆)가 생긴 이래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던 '기미왕(期米王)'으로 한때에 그 이름을 떨친 '반지로(潘次郞)'도 사십 평생을 기미시장과 떨어지지 못하더니, 기미시장의 조종(弔鐘)과 아울러 지난 십팔일 오전 여덟시에 세상을 떠낫다."

조선일보 1939년 10월 23일자는 곧 문을 닫게 될 인천 미두취인소(取引所·거래소)에서 일확천금했다가 한순간에 다 날리고 정신병자가 되어 반(半)걸인 생활을 하던 '기미왕'의 부음을 전했다.

미두취인소는 쌀과 콩의 시세 변동을 현물 없이 증거금만 가지고 사고파는 오늘날의 선물거래소와 비슷한 시장으로 이곳에 상장된 쌀을 '정기미(定期米)', 줄여 '기미'라 불렀다.

"백원의 현금으로 단 열섬의 벼를 사기가 어려울 터인데 미두시장에서는 백원으로 백석을 살 수가" 있었고, 하루에도 "오전 오후로 분하야 십칠절(회)의 오르고 나르는 시세에 맛추"는 기회가 주어졌다(1928년 10월 30일자). 이 시장에서 급사로 저축해둔 몇 십원의 자본으로 1920년 미두거래를 시작해 '가격 변화를 귀신처럼 맞춰' 불과 몇 달 동안에 삼십만원을 번 사람이 반지로였다(1939년 5월 14일자).

본명이 반복창(潘福昌)인 그는 거금을 손에 쥔 뒤 "인천 해안에 아방궁같은 굉장한 큰 집을 짓고" "서울 올너와서 각 여학교를 죄-다" 뒤져 "경성여자고보(경기여고 전신)에 다니는 (김)후동이란 처녀"와 조선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면서 경인선을 전세 내 인천 하객을 경성으로 오게 해('삼천리' 1939년 1월 1일자 등), 조선은 물론 일본에까지 '미두계의 패왕'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를 보고 "꿈만 잘꾸면 땅 팔아 가지고 대드는 허욕장이의 돈"(1933년 10월 10일자)이 인천으로 몰렸고, 일제는 미두취인소를 경성 평양 부산 대구 신의주 등으로 확대했다(1928년 11월 1일자).

그러나 "공정하게 쌀 갑슬 조절하기 위하야 생겨낫다는 기미시장은 조선 사람의 뱃속까지 넘어간 쌀을 토하게 하야 영양을 빼서가기도"하면서 "인천 바다는 기미로 손을 턴 사람들의 흘린 눈물로 되엇다고 말할" 정도로(1939년 5월 11일자) '반지로의 꿈'을 좇던 수많은 투기꾼을 파산으로 몰고갔다. 반지로도 전 재산을 순식간에 날리고 사기꾼으로 구속된 뒤(1923년 5월 26일자) 폐인의 길을 걸었다.

조선의 식량 수탈 편의를 위해 일제가 허가했던 인천 미두취인소는 1939년 일제가 곡물시장을 직접 통제하면서 개장 43년 만인 11월 28일자로 폐쇄됐다. '담배 한대 피는 새 몃 십만원도 물거품처럼'(1939년 5월 13일자) 만든 투기판이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효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