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간 쌀 1t 퍼간 항아리, 또 1t 채워졌다

본지는 9월 8일자 A8면에 '두 달 동안 쌀 1t 퍼갔다, 마르지 않는 항아리'란 제목으로 서울 서대문구 원천교회의 '사랑의 쌀독'을 소개했다. 본지 보도가 있은 후 '쌀을 기부하고 싶다'는 연락이 쏟아졌고, '우리도 사랑의 쌀독을 만들고 싶다'는 문의도 이어졌다. 보도가 있은 지 열흘 만에 기부받은 쌀이 지난 두 달간 기부받은 것보다 많을 정도다. 높이 1m 남짓의 작은 사랑의 쌀독이 만든 '기부 릴레이'를 소개한다.

"사랑의 쌀독이 어디 있죠?"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원천교회 앞에 선 여주 농협 트럭에서 20대 남성 두 명이 내렸다. 쌀독 위치를 확인한 두 명은 트럭 창고문을 열더니 10㎏짜리 쌀포대를 내리기 시작했다. 트럭 창고에는 쌀포대 100개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당황한 교회 사람들에게 20대 남성은 "우리는 농협 직원인데, 어떤 사람이 전화해서 쌀만 전해주고 그냥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하루 전, 여주 농협에 전화를 걸어 쌀을 주문한 사람은 "조선일보에 나온 교회에 쌀을 기부하려고 한다. 여주쌀 중 최고 좋은 쌀로 해달라. 기사를 보니 쌀독에서 두 달 동안 쌀 1t을 퍼갔다더라. 그만큼 보내달라. 내 신분은 절대 비밀"이라고 했다. 교회 문강원 담임목사는 "조금씩 작은 노력을 모아 도움을 주자는 취지였기 때문에 대량 기부는 안 받았는데, 이번 기부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교회 신도들 사이에선 쌀 기부 캠페인이 한창이다. 김연희(49)씨는 "밥을 할 때마다 종이컵 1개 분량씩 쌀을 모아 기부하는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못 보던 사람들'의 기부도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주 초 허름한 옷차림에 험상궂게 생긴 한 40대 남성이 승용차를 몰고 쌀독 앞에 나타났다. 교회 관계자들은 "쌀을 잔뜩 퍼 갈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남성은 자신의 승용차 뒷좌석과 트렁크에 쌀 두 가마니를 실어와 붓고 갔다. 반포에 산다는 한 50대 여성은 10㎏ 포대 한 개를 부은 후, 교회 사무처에 별도로 5만원을 또 건넸다. "더 많이 넣고 싶었는데 아쉬워서 그런다. 지금 가진 돈 전부인데 이걸로 쌀을 사서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충북 청주에서 '좋은 일에 써달라'는 메모와 함께 쌀 한 가마니가 배달되기도 했다. 제주형 목사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교회 밖에서 한참을 기웃거리다 쌀독으로 가길래 쌀을 퍼가러 온 줄 알았다"면서 "그런데 그 학생이 책가방에서 쌀이 담긴 조그만 비닐봉지를 꺼내 붓고 가더라"고 했다.

붓는 만큼 퍼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예전엔 아침에 한 번 쌀을 부어주면 충분했는데, 요즘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쌀독이 바닥을 보인 적도 있을 정도다. 쌀독을 설치한 후 두 달 동안 최소 1t의 쌀을 퍼갔는데, 지난 열흘간 교회에서 쌀독에 새로 넣은 쌀만 300㎏이 넘는다.

원천교회 사무국엔 '쌀을 퍼가고 싶다'와 '기부하고 싶다'는 전화가 하루 40∼50통씩 걸려 온다. 교회 이종민 사무장은 "종로에 사신다는 한 할아버지가 진짜 쌀을 주느냐고 거듭 묻더니 바로 오시겠다고 했다"면서 "날씨가 안 좋아서 다음에 오시라 했더니 '언제 어디든 못 가겠어요. 쌀을 준다는데'라고 하던 할아버지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 집 앞에 2호선이 있는데 2호선 타고 교회 가는 방법 좀 알려달라. 정말 쌀이 없어서 그런다'는 할머니, '다른 건 묻지 말고 교회 주소만 불러 달라. 쌀을 갖다 주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교회나 구호단체에서 "우리도 사랑의 쌀독을 만들고 싶다"는 문의 전화도 전국 각지에서 하루 3∼4통씩 걸려 온다. '사랑의 쌀독'이란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쌀독의 쌀에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엔 항상 하얗고 윤기가 흐르는 쌀만 담겨 있었는데, 요즘은 색이 어두운 묵은 쌀도 종종 눈에 띄고 있다. 교회 관계자는 "쌀을 기부할 형편이 안 되는 분들도 와서 쌀을 넣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회는 조만간 쌀독 옆에 김치냉장고를 하나 들일 예정이다. '쌀이 없는데 반찬은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