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리더십] "이번엔 헬스·뷰티점 도전… 무모한 꿈이 나를 이끈 힘"

지난 14일 오후, 카페베네 김선권(44) 대표는 최근 새로 시작한 '디셈버24' 서울 강남역점에서 상품과 인테리어를 점검하고 있었다.

디셈버 24는 이른바 '드럭스토어'로 불리는 헬스·뷰티 유통전문점이다. 국내에는 CJ그룹이 '올리브영', GS리테일이 '왓슨즈' 브랜드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동네마다 약국이 있고, 화장품 전문점이 수도 없이 깔려 있는 한국 시장에서 이 분야는 대기업들도 오랫동안 고전할 만큼 가장 어려운 유통업으로 꼽힌다.

지금껏 이룬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둔 김 대표가 굳이 이런 새 사업을 벌이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이 많다. 그가 2008년 창업한 카페베네는 4년 만에 800호점을 열어 국내 1위 커피전문점이 됐고, 지난해 11월 시작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블랙스미스'는 벌써 점포가 60개가 넘었다. 경기가 차갑게 식었다고 다들 아우성인데, 이만하면 그는 성공을 즐기며 당분간 안주할 만도 하다.

"무모한 꿈,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꿈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원동력입니다."

◇맨해튼에서 개인 보증까지 걸고 정면승부

김 대표는 담담히 말했다. 그는 헬스·뷰티 유통사업의 브랜드를 '디셈버24'로 지은 것도 꿈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꿈을 꾸는 가장 아름다운 날이고, 그런 꿈을 주는 매장을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김 대표가 꾸고 있는 '무모한 꿈'은 이뿐이 아니다. 그는 카페베네의 해외 1호 매장을 지난해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 열었다. 10년 동안 임대료를 주기로 건물주와 계약을 맺었다. 10년 임대료는 무려 135억원. 김 대표는 개인 재산으로 이 임대료의 보증까지 섰다. 해외 1호 매장은 매장을 열기 쉬운 중국이나 동남아, 그리고 교민이 많은 미국 LA가 아니라 '세계의 중심'에서 제대로 승부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매장 한 곳에서만 16억원의 결손이 났지만 그는 낙관적이었다.

"매장 하나에서 결손을 본 게 아니죠. 맨해튼이 미국 사업 총본부로 역할을 하면서 그동안 댈러스와 캘리포니아, 뉴저지 등에 프랜차이즈 사업계약을 맺었습니다. 돈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성과죠. 매장을 운영하면서 분명한 가능성도 발견했으니 손실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그는 최근 맨해튼에 2·3호점 점포 임대 계약을 맺었고, 맨해튼에만 50호점을 열 계획이다. 스타벅스를 잡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 있다"고 했다.

"지금 타임스스퀘어점의 손님 중 98%가 현지인입니다. 새벽 6시에 문을 열면 손님이 몰려들고 오후 2시 무렵까지 거의 전부가 현지인입니다. 그 이후부터 교민이 늘어나고 밤 10시쯤 되면 교민이 50%에 달해요. 카페를 즐기는 문화가 현지인과 교민들이 다른 겁니다. 현지인들은 아침과 점심 대용으로 동양적인 우리의 베이커리 제품과 함께 커피를 즐기고 교민들은 사람들 만나고 대화하는 장소로 밤늦게까지 카페를 이용합니다. 현지인과 교민의 이 같은 '조화'를 통해서 가장 효율 높은 매장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고 있어요."

◇출발부터 맛본 뼈아픈 실패

지금 김 대표를 보면 '실패'란 걸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업의 시작부터 그는 뼈아픈 실패의 고통을 맛봤다.

그의 사회생활 개막은 1995년 경기도 동두천에서 선배와 2000만원씩 투자해 40평(약 130㎡)짜리 호프집을 연 것. 그러나 1년도 안 돼 문을 닫고 말았다. 전남 장성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에게 당시 2000만원은 큰돈이었다. 그는 이 2000만원을 지불하고 '내가 잘하는,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업종을 선택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저는 사람을 대하고 세일즈를 하는 능력이 남보다 나은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적은 자본으로 목이 나쁜 지하에 얻은 호프집'이란, 그런 제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곳이었습니다. 오는 손님들에게는 최선의 서비스와 노력을 바치더라도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전해서 더 많은 손님이 오고 단골이 확보될 때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으니까요."

이후 그는 스스로의 적성에 맞는 컴퓨터 판매업에 나섰다. 의정부 동두천 일대의 학교와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세일즈를 하고 직접 수리도 해주면서 제법 많은 컴퓨터를 팔았다. 그때 새로운 사업이 눈에 띄었다.

"당시 오락실이 성업 중이었는데, 청계천에서 만드는 모조품이 거의 모든 곳에 납품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고객이 직접 올라타서 달리고, 또 가격도 몇천만원씩 하는 오토바이 같은 핵심 제품을 청계천에서 공급받는 것에 오락실 점주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었죠. 그래서 정품을 일본에서 들여와 공급해주는 오락실 프랜차이즈(세가코리아)를 시작했어요. 인테리어도 밝게 하고 깨끗하게 꾸며 부모들의 걱정도 덜어주니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 사업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공급된 오락실 기계의 기판을 가맹점주들이 가맹본사에서 구입하지 않고 또 청계천에서 샀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요식업으로 진출해 '삼겹살닷컴'을 열었고, 연이어 '묵은지 돌풍'을 일으킨 추풍령 감자탕을 열어 히트시켰다. 그러나 중국산 묵은지까지 수입하며 시장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요식업에 회의를 느껴 카페베네를 열었다.

◇적기에 빠르게 투자한다

그는 2008년 서울 천호동 로데오거리에 1호점을 열었을 때가 또 다른 인생의 위기였다고 말했다.

"손님이 들어왔다가도 처음 보는 브랜드다 싶어 다시 나가버렸어요. 그래서 브랜드부터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케팅 비용을 과감하게 투자했죠. 디자인과 스타마케팅이라는 전략에 충실해 브랜드를 키웠습니다."

그가 많게는 한 달에 40개씩 가맹점을 늘려나갈 때 "지나치게 확장한다. 자금이 어렵다"는 루머도 많았다.

그는 "다른 업주들이 추풍령 감자탕의 '묵은지'를 베꼈듯이 카페베네의 콘셉트도 얼마든지 베낄 수 있는 것"이었다며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할 수 있을 때 점포를 늘려 선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 점포를 개설해주고 운영할 인력도 키우지 못한다는 루머도 있었지만 그건 시장 논리를 모르는 이야기"라며 "커피전문점 시장에서 100개의 점포를 열 수만 있다면 거기에 필요한 요원들은 어차피 시장에서 양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100명의 커피전문점 요원이 있다면 그중 10명만 우리 점포를 여느냐, 아니면 40명이 우리 점포에서 일하느냐가 승부를 가르는 차이죠. 끊임없이 개척하고 투자하는 사람이 결국은 이기는 것입니다."

그는 수백억원의 차입금을 얻어 예금시켜놓고 있다. 매달 손해 보는 이자만 수억원씩이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적기에, 빠르게 투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그래야 이긴다"며 "살아있는 한 투자하고 새 사업을 개척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