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힘든 삶, 神은 어디에… 손으로 눌러 쓰니 답이 보였죠"

시적인 문체로 인간의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글쓰기를 해온 소설가 오정희(65)씨가 최근 새 책 '이야기 성서'(여백)를 냈다. 하느님이 세상을 지은 '최초의 계약'부터 예수 부활을 다룬 '새로운 약속'까지, 성경의 구절을 10년간 자신의 언어와 문체로 재구성한 에세이다.

"인간 기저에 깃든 불안과 고독, 슬픔의 뿌리가 궁금했어요. 신은 어디에 있나. 3000년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죠."

중·고등학교를 미션스쿨로 다녀 어릴 때부터 성경에 익숙하지만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건 불과 10년 전. '마더 테레사나 이태석 신부처럼 타자를 위해 헌신하는 삶의 의미를 알고 싶은 마음'이 그를 신앙으로 이끌었다.

생각만큼 봉사활동에 시간을 많이 내지 못해 무안해하던 그가 성서를 옮겨 적는 사경(寫經)을 시작한 것은 2003년.

"꼭 몸으로 노동해야만 남을 돕는 건가요? 오 선생님처럼 문학 하는 사람은 글을 써서 세상에 봉사할 수도 있잖아요"라는 지인의 충고를 듣고서였다.

"성서라는 게 여러 문헌의 재구성이에요. 같은 사건도 이쪽에선 이렇게, 저쪽에선 저렇게 달리 얘기해서 사람들이 읽는 걸 힘들어하는 것 같았어요. 손으로 꾹꾹 옮겨 쓰면서 사건의 인과관계를 잡아보고 싶었죠. 그러면서 세상의 고통과 슬픔에 관해 내가 느낀 단상을 곁들이면 제 나름의 새로운 성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힘든 것에 대한 신뢰가 있다. 미술에서는 모사, 문학에서는 필사가 그렇다. 성서를 베껴 쓰면서 오씨는 성서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간군상의 고통에 공감하게 됐고, '만절(晩節)'이라는 교훈도 얻었다. 만년의 절제를 줄인 말이다.

"나이가 드니 아무도 나에게 '잘못했다' '틀렸다'라고 말해주지 않아요. 그게 너무 무서워요. 내가 확신하는 기억이 실은 잘못된 기억일 수 있는데, 행여 내가 민망할까 봐 아무도 그걸 지적해주지 않고, 때론 나도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꽉 막힌 늙은이가 될까 봐 두려워요." 이미 출간된 문헌들을 찾아 읽고, 신학자와 성직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느끼게 된 어떤 커다란 존재의 손길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는 성서를 읽으면서 "모든 신이 전능자이고 해결자라 생각했으면 오히려 어려웠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이 세상의 고통에 함께 신음하는 존재가 신이고, 욥기에 나오듯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나 슬픔에 대해 '왜! 왜!' 하고 고함지르는 게 문학과의 접점임을 알았어요. 초월과 거룩은 이 세상 한복판 우리 이웃 속에 있었죠. 소설가로 딱 45년을 살았지만 이제야 비로소 긴 여정의 첫발을 디딘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