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_불심으로 세운 황금도시… 이방인의 낯섦도 껴안다

'미얀마' 하면 떠오르는 것. 아웅산 수치 여사, 군사 독재, 1983년 아웅산 테러…. 여행지로는 낯설고 생소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밍글라바"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 이방인의 불안은 사라진다. '밍글라바'는 우리로 치면 '안녕하세요'란 미얀마 말로, '축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얀마에서 만난 이들의 표정은 천진했다. 햇볕에 얼굴이 타는 것을 막기 위해 타나까(thana ka)를 양 뺨에 바른 아이들은 인사를 건네며 생글거렸다. 이들은 하나같이 합장(合掌)하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어느 곳에 가도 황금빛 불상과 탑이 있었고, 사람들은 무릎 꿇고 기도했다. 천진함과 경건함이 느껴지는 곳, 미얀마다.

◇부처가 살아있을 때 만든 금빛 파고다(佛塔)… 양곤

미얀마 여행의 출발지는 2005년까지 수도였던 미얀마 정치·경제의 중심지 양곤이다. 양곤에 도착하자마자 햇살에 반짝이는 금빛 탑이 눈에 들어왔다. 양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금빛 탑 이름은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 미얀마어로 '쉐(She)'는 '황금', '다곤(Dagon)'은 '언덕'이란 의미다. '황금의 언덕'이란 뜻이다. 높이 60m의 언덕 위에 높이 100m의 탑을 올렸다. 이 탑은 불자들이 보내온 보석으로 만들어졌다. 탑의 표면을 덮은 황금판 1만3000여개는 무게만 60t이 넘고, 상부는 다이아몬드 5448개(약 1800캐럿)를 비롯해 루비, 사파이어 등 1만여개의 각종 보석으로 장식돼 있다.

미얀마인이라면 생전에 한 번은 꼭 찾는 성지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부처 생존 당시 만들어진 탑이다. 2500여년 전 부처가 미얀마에서 온 형제 상인에게서 벌꿀을 공양받고 나서 뽑아준 8개의 머리카락을 오깔라파 왕이 신전에 모신 것이 쉐다곤 파고다의 시초가 됐다. 언덕을 만들기 위해 흙을 퍼낸 자리가 인근의 깐도지 호수가 됐다.

온 가족이 방문해 기도를 올리는 사람, 탑을 돌며 동서남북으로 절하는 스님, 지방에서 올라온 듯 낡은 차림의 수행자, 동물상과 옥불상에 물을 뿌리면서 복을 기원하는 관광객…. 수많은 사람이 하늘에 닿을 듯한 탑에 절을 하며 부처에게 번뇌를 고백하고 소원을 빌었다.

◇2200여개의 탑과 사원… 바간·만달레이

바간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사원과 함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중 하나다. 바간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는 장엄한 탑들의 바다가 일렁였다.'옛 사람들이 꿈꿨던 불국토가 이곳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성기 때 6000여개의 탑·사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2200여개가 남아있다.

혹자는 바간을 '피 냄새 없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라 부른다.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 세계 유명 유적들은 대개 강제 노역(勞役)을 통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바간은 미얀마 사람들의 불심으로 만들어졌다. 미얀마인들은 자발적으로 몰려들어 탑 짓기에 힘을 보태거나 벽돌이나 보석 등을 보내왔다고 한다. 해질 무렵 쉐산도 파고다에 오르면 석양에 춤추는 탑들의 바다를 볼 수 있다. 땅에 흩뿌려진 듯한 탑과 사원들은 태초부터 자연의 일부였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바간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미얀마 마지막 왕조의 수도 만달레이가 나온다. 19세기 영국군에 점령당한 만달레이는 오리엔탈리즘의 상징이다. 미얀마 최대 수도원인 아마라푸라의 마하간다용 수도원에서는 매일 아침 수백 명의 승려가 탁발(托鉢)하기 위해 줄을 선다. 까까머리 동자승들은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발우를 들고 차례를 기다린다. 주민들은 음식을 준비해온다. 관광객들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만이 이 성스러운 의식의 적막을 깼다.

◇호수에서 태어나 살고 죽는 사람들… 인레 호수

미얀마에는 160개 이상의 민족이 산다. 미얀마 북동쪽의 해발 880m 산정 호수인 인레 주변에는 샨·인따·따웅뚜족(族) 등 소수민족 7만여 명이 살고 있다. 만달레이에서 비행기로 40여분 거리에 헤호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에서 다시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려가면 인레 호수의 낭쉐 선착장에 도착한다. 한눈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드넓은 호수. 보트를 타면 호수를 왔다 갔다 하는 인따족이 보인다. 길이 22㎞, 폭 11㎞의 호수에서 사는 이들에게 나룻배는 두 발과 같다. 이들에게 호수는 생활 자체다. '호수의 아들'이라 불리는 인따족은 갈대와 부레옥잠을 흙에 섞어 호수에 띄우는 방식으로 밭을 만들어 토마토, 양파 등을 수경 재배하고, 통발을 이용해 고기를 잡는다.

인레 호수에도 사원이 있다. 호수 남쪽의 파웅도우 사원에는 불상 다섯 개가 있다. 사람들이 금박을 붙여 축구공만 한 금덩어리로 변한 이 불상들에는 전설이 있다. 1965년 축제 기간에 마을을 돌며 복을 빌어주기 위해 배에 싣고 나간 불상 5개가 비바람에 물속에 빠졌는데, 당시 4개의 불상만 찾고 1개는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4개의 불상만을 싣고 사원에 돌아오자 잃어버린 불상이 갈댓잎에 싸인 채 놓여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불상이 스스로 돌아온 것이라 믿고, 지금도 매년 10·11월 이 불상을 제외한 4개의 불상을 배에 싣고 축제를 벌인다.

여행수첩

미얀마의 6∼10월은 우기, 11∼5월은 건기다. 우리와 시차는 2시간 30분. 모든 사원·파고다를 출입할 때는 반드시 맨발로 입장해야 하기 때문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게 편하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바지나 치마는 피해야 한다. 주한 미얀마대사관 (02)790-3814

대한항공은 최근 인천공항~미얀마 양곤 정기 직항편을 운항하기 시작했다. 태국 등 제3국을 경유해 10시간 넘게 걸리던 비행시간이 6시간으로 줄었다. 화·목·토·일요일 등 주 4회 운항한다. 대한항공 인천~양곤 노선에 취항하는 B737-800 '보잉 스카이 인테리어' 항공기에는 전 좌석 주문형 오디오 비디오 시스템(AV OD)을 장착했고, 기내 수하물 수납공간도 기존 같은 기종에 비해 확대했다. 1588-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