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판 앞으로 30대 남자 지나가니… 면도기 광고가 나오네?

2054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사람의 홍채를 인식해 광고를 내보내는 광고판이 나온다. 맞춤형 광고를 통해 광고 효과를 높이고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미래의 광고판이다.

먼 미래의 일일 것만 같았던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광고판이 2012년 대한민국에 등장했다. 지난달 말 개장한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IFC) 빌딩 지하에는 특별한 광고판이 있다. 사람 키 크기만 한 이 광고판은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다른 광고를 내보냈다. 30대 남성이 지나가자 면도기 광고가 나오고 20대 여성이 지나갈 때는 화장품 광고가 나왔다. 광고판에 설치된 풀(Full) HD급 카메라에 촬영된 주변 10m 이내의 사람들의 얼굴을 분석해 성별과 연령대에 맞는 광고를 내보내는 것이다.

◇옥외광고의 디지털 변신

불필요한 공해처럼 여겨지던 옥외광고가 디지털을 받아들이면서 새로 태어나고 있다. 길가나 공공시설에 무분별하게 붙어 있던 포스터 대신 LCD나 LED 디스플레이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디지털사이니지(Digital Signage)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디지털사이니지는 상업공간이나 공공장소에서 다양한 정보와 광고 등의 메시지를 디스플레이 장치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디스플레이에 광고를 내보내는 것이나 지하철 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LED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반적인 옥외광고는 일일이 사람이 교체해야 하지만 디지털사이니지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관제센터에서 손쉽게 광고 내용을 교체할 수 있다.

최근에는 IFC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실시간으로 이용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디지털사이니지가 대세가 되고 있다. IFC몰에 설치된 얼굴 인식 광고판은 SK텔레콤과 SK마케팅앤컴퍼니가 함께 개발했다. 이 광고판은 카메라에 촬영된 얼굴을 수백 개의 특징점으로 분석해 성별과 연령대를 구분한다. 연령대는 유아·어린이·청년·중년·노년의 5단계까지 구분해낼 수 있다. LG전자도 인천공항 무빙워크를 따라 높이 1.4m, 길이 14m의 대형 디지털사이니지 광고판을 세웠다. 휘센 에어컨을 알리기 위한 이 광고판은 무빙워크에 올라탄 이용객의 움직임에 따라 광고판 위의 동물들도 함께 움직이고 색깔도 바뀐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도 SK마케팅앤컴퍼니와 함께 작년 9월부터 400인치 크기의 대형 디스플레이 'CGV 클라우드'를 영화관 10곳에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다. CGV 클라우드는 디스플레이에 설치된 터치스크린을 이용자가 만지면 전체 디스플레이가 반응해서 새로운 영상을 보여준다.

◇통신-포털, 디지털사이니지 위해 연합

국내 이동통신사와 포털업체들은 망 중립성 문제 등 여러 이슈에서 갈등을 빚고 있지만, 디지털사이니지에서만큼은 함께 손을 잡고 있다. 전국에 유무선 네트워크를 보유한 통신사 인프라와 포털업체의 콘텐츠가 디지털사이니지 확산을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KT는 2005년부터 아파트 엘리베이터와 대학교, 대형 병원에 디지털사이니지를 설치했고, 최근에는 버스정류장·지하철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4만여개에 이르는 KT 디지털사이니지를 채워주는 역할은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이 맡고 있다. NHN은 지난해 12월부터 KT 디지털사이니지에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포토뉴스, 스타 미투데이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디지털사이니지 협력을 맺은 LG유플러스는 좀 더 생활에 밀착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아파트 1층 로비에 설치하는 23인치 터치형 LED 모니터링 'U+미디어라이프'는 자동심장제세동기(AED)의 보관함 역할도 한다. 심근경색 등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미디어라이프 모니터를 통해 사용방법을 보고 자동심장제세동기를 이용하면 된다. LG유플러스는 올해 상반기까지 3000여대의 자동심장제세동기를 보급했다. SK텔레콤과 SK마케팅앤컴퍼니는 하나은행·CGV 등과 함께 디지털사이니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IT 서비스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하다. 이들 기업은 통신사들과 달리 기업고객(B2B)과 수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삼성SDS는 지하철 스크린도어와 연계한 디지털사이니지를 서울대입구·혜화·신촌 등에 설치했다. LG엔시스와 동부CNI도 B2B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사이니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전 세계 디지털사이니지 시장 2년 후 10조원 육박

디지털사이니지가 디스플레이 산업과 광고·콘텐츠 업계의 새로운 활로로 떠오르면서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사이니지 시장 규모는 2010년 22억9000만달러(약 2조5590억원)에서 2014년에는 82억4000만달러(약 9조2082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이미 일본은 철도에 디지털사이니지를 전략적으로 설치하고, 통신사인 NTT도코모는 향기가 나는 광고판까지 선보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디지털사이니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내 디지털사이니지 시장 규모도 2014년에 2207억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정부와 민간기업들이 중심이 돼 협회를 만들고 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한국텔레스크린협회장을 맡고 있는 한원식 KT 기업상품본부장은 "한국은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발달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 경쟁력과 뛰어난 인적자원, 글로벌 마케팅 능력은 국내 디지털사이니지 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