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서 빛으로… 인생역전! 20만명

월드컵 4강 신화로 온 나라가 들떠 있었던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로 온 국민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졌고 수십만명이 펼친 거리 응원은 한민족의 저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월드컵의 이면에는 신용불량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었다. 1997년말 143만명 수준이던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는 불과 3년 후인 2000년에 200만명을 돌파했고 2002년 이후부터는 증가세가 가속화돼 심각한 사회·경제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급증하는 금융채무불이행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2년 출범한 신용회복위원회가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당시 한국 사회는 '신용회복'이란 용어조차 낯설었지만 지금은 매년 10만명 정도가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급증한 신용불량자…신복위의 출범

2000년대 초반 금융회사, 소비자, 정부 등 각 경제주체는 가계부채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다. 특히 신용카드사는 길거리에서 회원을 모집하면서 엄격한 심사 없이 카드를 발급했고 대출한도도 크게 확대했다.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금융 부문의 각종 규제를 완화했고 1999년 5월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의 상한을 아예 폐지했다. 대출 상한 한도가 없어지자 소비자들은 카드 한장으로 아무런 대출 상담 없이 수백만~수천만원을 빌릴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규제가 느슨해지면서 발급 카드 수는 1998년 4202만장에서 2002년 1억481만장으로 4년만에 2배 이상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대출 잔액은 32조7000억원에서 412조8000억원으로 13배 가까이 급증했다. 가계대출이 급격하게 늘자 정부는 신용카드 사용한도를 대폭 축소했고 카드 대출로 돌려막기를 하던 소비자들은 빚을 갚지 못해 금융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른바 '카드사태'다.

금융채무불이행자가 늘면서 당시 한국 사회에선 경제관련 범죄가 늘고 경제문제로 인한 가족해체 사례가 증가했다. 총 범죄 건수에서 경제관련 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7년 18.6%에서 2002년 21%로 상승했고 이 기간에 총 이혼 건수에서 경제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4.2%에서 13.6%로 크게 늘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금융감독원은 2002년 6월 은행, 신용카드사 등과 함께 다중채무자 지원을 위한 제도 수립에 착수했고 그해 9월 30일 '신용회복지원위원회'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는 이듬해 11월1일 비영리사단법인 신용회복위원회(약칭 신복위)로 거듭났다.

◇10년간 20만명, '신불자' 딱지 떼고 새 삶

신복위는 다중채무자의 채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02년 10월 1일부터 '개인워크아웃' 제도를 시행했다. 연체 기간과 연체 금액을 심사해 연체이자, 원금 일부를 감면해 주고 상환 기간을 연장해주는 제도다.

그러나 개인워크아웃 제도가 도입됐는데도 금융채무불이행자는 계속 늘었다. 2000년 말 208만명이던 채무불이행자는 2002년 말 263만명, 2003년 말 372만명으로 급증했다. 신복위는 정부가 2004년 3월 발표한 '신용불량자 종합대책'에 따라 심사인력과 상설 상담소를 확충하고 개인워크아웃 제도를 개선하면서 2004년과 2005년에 각각 23만9813명, 23만3862명의 채무조정을 지원했다.

개인워크아웃 도입 이후 지난 8월말까지 약 10년간 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은 총 106만9458명으로 이 중 약 20만명이 금융채무불이행자였다가 신용이 완전히 회복됐고 약 50만명은 현재 신용회복 프로그램에 따라 신용을 회복하는 중이다.

신복위의 개인워크아웃 제도가 활성화되고 신용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금융채무불이행자는 지난해 9월말 현재 130만명으로 신복위가 관련 통계를 종합적으로 집계한 200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신복위는 단순히 채무를 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2003년 12월 개설한 취업안내센터를 통해 채무자의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기도 한다. 취업안내센터는 시민단체·사회단체·지자체와 연계해 취업·창업을 지원하며 2004년 이후 지난 8월말까지 취업을 하도록 도와준 사람은 총 2만4183명에 달한다.

2006년부터는 국민·기업·신한·우리·외환·하나·농협중앙회 등 7개 금융회사로부터 총 140억원을 출연받아 신용회복 지원을 받는 사람에게 500만~1000만원을 연 2~4%의 금리로 대출해주고 있다. 신용회복 지원을 받는 대부분의 채무자는 월 소득이 15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으로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가 어렵다. 이 때 실직이나 질병과 같은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하면 고금리의 사채를 쓰다가 결국 다시 극빈층으로 전락할 수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한 제도다. 신복위는 2006년 이후 6만5530명에게 총 1995억5300만원을 대출해 줬다.

신복위는 우리 사회에 건전한 신용질서가 뿌리내리도록 2003년부터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신용관리교육을 하고 있다. 이종휘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은 "개인워크아웃제도의 효용성을 높이고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범위를 확대하는 등 공익적 역할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