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감 아들 위해 헌혈증 520장 모은 강원 인재들

지난 17일 헌혈증 500여장이 담긴 작은 상자를 손에 든 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동을 찾았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김주혁(1)군 병문안을 온 것이었다. 주혁군은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는 강원학사 김병기(43) 사감의 아들이다. 김 사감의 아들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헌혈증을 모아 온 것이다.

정재필(24)씨는 "강원학사 학생들에게 김 사감은 '아버지' 같은 분"이라며 "작은 도움이나마 드리고 싶어 헌혈증을 모아 왔다"고 말했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낯설어 주혁군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혜진(20)양이 다가가 "주혁아, 너 어쩜 이렇게 예쁘니" 하고 안아 주자 주혁군 얼굴에 이내 웃음이 퍼졌다.

김 사감은 강원도 토박이다. 내가 사는 고장을 위해 일하고 싶다며 2003년 강원도청에 들어갔고, 2006년엔 서울에 있는 강원학사 사감 자리에 지원했다. 그는 "우리 고장 최고의 인재들을 위해 일한다면 그보다 더 보람있는 일이 어디 있겠나 싶어 지원했다"고 말했다.

강원학사에서 김 사감은 학생들의 아버지이자 친구였다. 학생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김 사감을 찾아 상담했다. 한재호(24)씨는 "아르바이트와 대학 생활을 병행하면서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사감 선생님이 말없이 저를 데리고 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위로해 주셨다"고 말했다. 김 사감은 "학생들은 내 삶의 비타민이다. 학사 사감으로 있었던 지난 6년 동안 학생들 행복이 나의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김 사감은 올해 2월, 가족을 서울로 불러와 6년 동안의 '기러기 아빠' 생활을 접었다. 그러나 행복할 것만 같았던 서울 생활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김 사감의 4남매 중 막내 주혁군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김 사감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학사 관계자를 통해 김 사감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학사 학생들이 헌혈증 모으기를 시작했다. 백혈병 치료비 마련에 헌혈증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후 강원학사에선 주말에 6∼7명씩 무리를 지어 헌혈하러 나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주변 친구들로부터 헌혈증을 모아오기도 했다. 이렇게 모인 헌혈증이 두 달 만에 520여장이다. 지금은 학사에서 생활하지 않지만, 멀리서 소식을 듣고 편지와 함께 헌혈증을 보내온 학생도 있었다. 편지에는 '사감 선생님 덕분에 용기를 잃지 않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사감 선생님도 끝까지 힘내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학생들은 헌혈증 모으기에 이어 모금활동도 진행 중이다.

김 사감은 "학생들로부터 이런 큰 사랑을 받은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 사감은 학생들에게서 전달받은 헌혈증 중 사용하고 남은 것은 백혈병 어린이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