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5월의 신부, 중세서 비롯… 결혼식때 꽃향기로 몸냄새 숨기려 한거죠"
입력 : 2012.09.21 17:39
중세에 빠진 그녀, 양태자 박사
마녀 낙인 찍힌 여성들 좇다 비주류 인생까지 관심 넓혀… 헌책방·벼룩시장서 자료 모아 그들의 삶과 사랑 책으로 펴내
오스트리아 공주 마르게리타가 프랑스의 샤를 8세와 결혼식을 올린 건 그녀가 세 살 때였다. 몸에 맞지 않는 웨딩드레스를 치렁치렁 걸치고 혼례를 치르는 그림은 당시 왕실과 귀족 사이에 성행한 정치적 결혼장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5월에 결혼식이 많은 이유도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면 알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몸을 씻을까 말까 했던 중세인들이 몸에서 나는 악취를 숨기기 가장 좋은 계절이 꽃향기 진동하는 5월이었기 때문이란다. 결혼식장을 온통 꽃으로 장식한 것도 르네상스 이후부터다. '결혼을 도와주는 남자'도 있었다. 생식 능력이 없어 아기를 갖지 못하는 남자에게 이웃 남자가 정자를 빌려주는 것으로, 당시에는 미풍양속이었다. 여성 미(美)의 기준도 독특해서, 풍만한 가슴이 아니라 하얀 가슴을 최고로 쳤다. 그러나 여자의 허락 없이 가슴을 만지면 벌금 45실링을 냈다. 당시 수소 한 마리 값이 1실링이니 성추행 한 번으로 전 재산이 거덜나는 일이 벌어졌다.
5월에 결혼식이 많은 이유도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면 알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몸을 씻을까 말까 했던 중세인들이 몸에서 나는 악취를 숨기기 가장 좋은 계절이 꽃향기 진동하는 5월이었기 때문이란다. 결혼식장을 온통 꽃으로 장식한 것도 르네상스 이후부터다. '결혼을 도와주는 남자'도 있었다. 생식 능력이 없어 아기를 갖지 못하는 남자에게 이웃 남자가 정자를 빌려주는 것으로, 당시에는 미풍양속이었다. 여성 미(美)의 기준도 독특해서, 풍만한 가슴이 아니라 하얀 가슴을 최고로 쳤다. 그러나 여자의 허락 없이 가슴을 만지면 벌금 45실링을 냈다. 당시 수소 한 마리 값이 1실링이니 성추행 한 번으로 전 재산이 거덜나는 일이 벌어졌다.
중세 1000년의 숨겨진 비사(秘史)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중세에 빠진 여자, 양태자(55) 박사 덕분이다. 지난해 '중세의 뒷골목 풍경'에 이어 최근 '중세의 뒷골목 사랑'(이랑)을 펴냈다. '뒷골목'이라는 말처럼 중세의 비주류 인생에 관한 집요한 탐구의 결과물이다. 대구 가톨릭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뒤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과 예나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중세의 뒷골목으로 '여행'을 떠난 건 '마녀' 때문이었다.
"마녀의 성에 갇혀 갖은 고문을 당하다 한을 품고 떠난 힘 없는 여인들의 자취를 좇다 보니 비주류 인생들이 보이더군요. 중세에는 유랑악사, 사형집행인, 박피공, 치료목욕사, 매춘부, 거지, 광대에 이르기까지 낮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도시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넘쳐났습니다. 그들 삶의 풍경이 궁금해 중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뷔딩엔, 이드슈타인, 겔렌하우젠 같은 소도시를 틈날 때마다 찾아다녔지요."
대학 도서관, 헌책방, 벼룩시장 등지에서 수집한 850여권의 중세 자료와 논문, 은사인 종교학자 안네 마리 클레어에게서 물려받은 수백 종의 종교신학서를 토대로 중세 비천한 직업군의 삶을 추적했다. "독일인들의 기록문화가 정말 훌륭해요. 시(市)에서 제공받은 중세의 자료도 아주 많았으니까요. 몇년에 마녀 몇명이 처형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중세를 재현한 축제도 1년에 몇차례씩 열립니다."
성(性)과 사랑의 풍속을 다룬 '중세의 뒷골목 사랑'에는 뜻밖에도 '페미니스트'가 등장한다. 중세 봉건시대에 여성해방을 부르짖은 작가 크리스틴 드 피장(1364~1429)이다. '여자들이여! 남자에게 무조건 순종하거나 종속되지 말고 동등하게 살아라.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여자도 교육을 받고 깨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편에게 잔인한 대우를 받으면 항거하고 반드시 고발하라고 했죠. 피장뿐 아니라 '마녀'로 몰려 처형된 여성들 중 상당수가 페미니스트였어요. 피장이 마녀로 몰리지 않은 것은 왕비와 귀족 부인들이 그녀를 비호한 덕분입니다." 성녀와 마녀도 한끗 차이로 추대되고 처형되었다고 꼬집었다.
"마녀의 성에 갇혀 갖은 고문을 당하다 한을 품고 떠난 힘 없는 여인들의 자취를 좇다 보니 비주류 인생들이 보이더군요. 중세에는 유랑악사, 사형집행인, 박피공, 치료목욕사, 매춘부, 거지, 광대에 이르기까지 낮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도시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넘쳐났습니다. 그들 삶의 풍경이 궁금해 중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뷔딩엔, 이드슈타인, 겔렌하우젠 같은 소도시를 틈날 때마다 찾아다녔지요."
대학 도서관, 헌책방, 벼룩시장 등지에서 수집한 850여권의 중세 자료와 논문, 은사인 종교학자 안네 마리 클레어에게서 물려받은 수백 종의 종교신학서를 토대로 중세 비천한 직업군의 삶을 추적했다. "독일인들의 기록문화가 정말 훌륭해요. 시(市)에서 제공받은 중세의 자료도 아주 많았으니까요. 몇년에 마녀 몇명이 처형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중세를 재현한 축제도 1년에 몇차례씩 열립니다."
성(性)과 사랑의 풍속을 다룬 '중세의 뒷골목 사랑'에는 뜻밖에도 '페미니스트'가 등장한다. 중세 봉건시대에 여성해방을 부르짖은 작가 크리스틴 드 피장(1364~1429)이다. '여자들이여! 남자에게 무조건 순종하거나 종속되지 말고 동등하게 살아라.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여자도 교육을 받고 깨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편에게 잔인한 대우를 받으면 항거하고 반드시 고발하라고 했죠. 피장뿐 아니라 '마녀'로 몰려 처형된 여성들 중 상당수가 페미니스트였어요. 피장이 마녀로 몰리지 않은 것은 왕비와 귀족 부인들이 그녀를 비호한 덕분입니다." 성녀와 마녀도 한끗 차이로 추대되고 처형되었다고 꼬집었다.
"똑같이 종교적 환시(幻視) 체험을 해도 당시의 교회가 그것을 성스럽게 해석했느냐, 불경스럽게 여겼느냐에 따라 마녀도 되고 성녀도 되었지요. 당대엔 마녀로 처형되었다가 훗날 성녀로 추앙받은 여성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과학보다 미신을 숭상하던 미혹의 시대 중세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하냐고 묻자,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사랑이 아니라 가문의 이득을 위해 공공연히 이뤄지던 결혼장사, 관청이 결혼식에 쓰인 그릇 개수까지 감시했을 만큼 호화판으로 치러지던 결혼식,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 등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는 사회 문제들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성매매만 해도, 중세의 유명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일반 여성에게 강간이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공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시(市)에서 '여성의 집'이라는 공창을 설립했고, 그곳 매출의 20%가 수도자에게서 나왔다는 자료가 있지요."
중세 가톨릭의 위선을 여지없이 비판하는 양씨는 수녀가 되고 싶었을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그에게 한국 종교의 현재를 물었다. "달만 보면 되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며 헐뜯고 싸우는 게 우리의 종교죠. 이대로 가다간 우리도 유럽처럼 텅 빈 수도원, 텅 빈 교회가 될 거예요. 유럽에선 젊은 수도자들의 나이가 50세입니다. 신자들이 없으니 교회가 민박을 하고 밥장사를 해서 돈벌이를 하지요."
22년째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연구활동을 하는 양씨는 "사회성이 제로이다 보니 교수가 될 생각은 전혀 없다"며 웃었다. "책 속의 사람들과 만나 대화 나누는 일이 즐거워요. 거기서 발견한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낼 겁니다. 시오노 나나미처럼요." 역사 연구도 좀 더 세분화되기를 희망했다. "유럽에는 왕실만 연구하는 학자, 왕의 정부(情婦)만 연구하는 학자, 동성연애 역사만 파고드는 학자, 거지들만 연구하는 학자 등 다양하지요. 그래서 더 풍요롭고요."
과학보다 미신을 숭상하던 미혹의 시대 중세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하냐고 묻자,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사랑이 아니라 가문의 이득을 위해 공공연히 이뤄지던 결혼장사, 관청이 결혼식에 쓰인 그릇 개수까지 감시했을 만큼 호화판으로 치러지던 결혼식,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 등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는 사회 문제들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성매매만 해도, 중세의 유명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일반 여성에게 강간이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공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시(市)에서 '여성의 집'이라는 공창을 설립했고, 그곳 매출의 20%가 수도자에게서 나왔다는 자료가 있지요."
중세 가톨릭의 위선을 여지없이 비판하는 양씨는 수녀가 되고 싶었을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그에게 한국 종교의 현재를 물었다. "달만 보면 되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며 헐뜯고 싸우는 게 우리의 종교죠. 이대로 가다간 우리도 유럽처럼 텅 빈 수도원, 텅 빈 교회가 될 거예요. 유럽에선 젊은 수도자들의 나이가 50세입니다. 신자들이 없으니 교회가 민박을 하고 밥장사를 해서 돈벌이를 하지요."
22년째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연구활동을 하는 양씨는 "사회성이 제로이다 보니 교수가 될 생각은 전혀 없다"며 웃었다. "책 속의 사람들과 만나 대화 나누는 일이 즐거워요. 거기서 발견한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낼 겁니다. 시오노 나나미처럼요." 역사 연구도 좀 더 세분화되기를 희망했다. "유럽에는 왕실만 연구하는 학자, 왕의 정부(情婦)만 연구하는 학자, 동성연애 역사만 파고드는 학자, 거지들만 연구하는 학자 등 다양하지요. 그래서 더 풍요롭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