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동인문학상] 단 한번의 투표로 결정했다, 최종 후보 5인

단 한 번의 투표로 '2012 동인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5편이 결정됐다. 정영문 장편 '어떤 작위의 세계'(문학과지성사), 한강 장편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박형서 소설집 '핸드메이드 픽션'(문학동네), 김중혁 소설집 '1F/B1'(문학동네), 김애란 소설집 '비행운'(문학과지성사).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유종호 김화영 오정희 정과리 신경숙 김동식 김대산)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8월까지 매월 쌓아올린 15편의 후보작 중에서 이 5편을 선택했다. 한 심사위원이 4편을 적는 방식으로 실시한 무기명 투표에서, 이 5편은 82%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정영문 한강 김중혁이 각각 5표, 박형서 김애란이 각각 4표의 지지였다. 심사위는 10월 중 이들 작품에 대한 최종심을 거쳐 올해의 수상작을 발표한다.

정영문(47)과 한강(42)의 작품은 지난해 12월 열렸던 첫 독회 통과작. 한 심사위원의 사적 고백을 빌리면 "금년은 시작부터 안심이다"는 평가를 받은 수작이다. '어떤 작위의 세계'는 작가 정영문의 샌프란시스코 체류기 혹은 표류기. 한국 문학에서 유례없이 희귀한 개성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지극히 사소하고 무용하며 허황된 고찰로서의 글쓰기"라고 했다. 잘 짜인 플롯과 극적인 서사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배신감까지 느끼게 할 작품이지만, 삶의 무의미와 외로움을 웃음으로 돌파하고 싶은 독자라면 필독을 권한다. 한 심사위원은 루쉰의 '아큐정전'에 나오는 주인공 아큐의 '정신승리법'을 떠올렸다. 못생기고 가난하고 힘도 없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가 이겼다"고 믿는 아큐. 심사위원들은 "정영문 소설은 한국 소설의 문학사적 차원에서도 의미있는 진화"라면서 "심리적·내면적 서술이 단순히 실험적 차원을 넘어 일반 독자와도 교감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섰음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했다.

한강의 '희랍어 시간'은 빛과 소리를 잃어가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다.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희랍어 강사)를 중심으로 인간이 상실한 본질과 그에 대한 복원을 나직하게 이야기한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이 "시력, 청력, 언어 등의 차원에서 치밀한 소설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심사위원들은 또 시적 문장을 지닌 한강 특유의 문체를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한 심사위원은 '모래 같은 문체'라고 비유하면서, "표면적으로는 한없이 부드러운 백사장 같은 풍경이지만, 직접 밟아보면 푹푹 빠지는 늪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김중혁(41)을 언급하면서 심사위원들은 표정도 명랑해졌다. 작가보다 한 세대 위의 심사위원은 "동화적이지 않으면서도 명랑한 이 상상력이 즐겁다"고 했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생각만 바꾸면 모든 것이 즐거운 놀이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의 세계관은 삶과 소설을 유쾌한 놀이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1F/B1'은 그 놀이의 공간적 배경을 '도시'로 삼은 단편집. 한 심사위원은 "이번 작품에서 작가의 야심은 아예 도시를 건설하는 데까지 나아갔다"고 했다.

'핸드메이드 픽션'은 "이야기로 세상의 혼을 쏙 빼놓고 싶다는 야망이 보인다"는 평가를 받은 박형서(40)의 작품집. '수공업'을 의미하는 제목부터 이야기가 지닌 고유의 힘을 자랑스럽게 선언한다. 한 심사위원은 "서사공학이니 이야기공학이니 문화콘텐츠니 말도 많지만, 원형으로서의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 또 이야기 주체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작가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고 평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된 김애란(32)의 '비행운'에 대해 한 심사위원은 이렇게 실토했다. "다들 뛰어난 작품이지만, 한 번 더 읽고 싶은 유일한 책이 있다면 바로 이 작품"이라고. 올해 후보 중에서 가장 어린 연배인 이 작가는 '비행운'에서 온갖 풍상에 찌들어있는 '누추한 생활'과 정밀한 문장으로 정면대결을 벌인다. 심사위원들은 "너무 일찍 철든 사람을 볼 때의 애처로움이 있다"면서도 "누추한 이야기건 허황된 이야기건, 김애란의 렌즈를 통과하고 나면 어떤 사물이든지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확신을 준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