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불모지 잠비아서 850명 도운 '코리아 仁術'

아프리카 잠비아 남부 카푸에(Kafue)시의 인구 2000명 정도 사는 낭공궤 마을. 지난달 28일 오전 10시쯤 낭공궤보건소에 절뚝거리며 들어선 폴 줄루(52·Paul Zulu)씨가 다리에 묶여 있던 붕대를 풀자 지름 20㎝의 썩은 살이 드러났다. 진료실엔 악취가 진동했고 고름이 흐르는 상처 부위로 파리가 몰려들었다. 줄루씨를 1년 만에 다시 진료한 의사는 정성수(53) 삼성서울병원 의료봉사단 단장. 정형외과 교수인 그는 "작년 7월 의료봉사 활동 때는 다리를 절단해야 할 정도였는데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상처 부위의 파리를 쫓으며 고름을 닦던 정 교수는 "작년 다리에 작은 상처가 났을 때 소독약만 발라줬어도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 했다.

정 교수를 비롯한 15명의 의료진은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잠비아에서 의료봉사를 했다. 잠비아는 평균 수명이 43세에 불과하고, GDP(국내총생산) 대비 의료 부문 예산이 3.4%로 남부 아프리카 최하위 수준이다. 수도 루사카를 제외한 대부분 지방에는 간단한 항생제나 소독약이 없어 상처가 생기면 살이 썩어들어가 끝내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작년 7월 줄루씨의 오른쪽 다리는 왼쪽 다리보다 세 배 이상 부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줄루씨는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잠비아 의사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줄루씨는 10년 넘게 다닌 구리 광산에서 해고됐고, 8명의 자녀를 어떻게 부양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1주일 뒤 만난 정 교수는 다리를 절단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게 해줬다. 썩은 살을 긁어내고 소독한 뒤 2주치 항생제를 처방해준 것만으로도 다리가 서서히 회복됐기 때문이다.

온몸 열 군데나 살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한 딸을 부축해 온 어머니 다이아나 추베사(42·Diana Chuvesa)씨도 1년 만에 재회한 의료진 앞에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의료봉사 활동 첫날 응급환자 1호로 온 그녀의 딸 오질리아 칸샴바(25·Ozilia Kanshamba)씨는 세 살 때부터 간질 발작 증세를 보이다 온몸이 마비된 식물인간이었다. 대소변은 사고로 남편을 잃은 추베사씨가 혼자 받아내야만 했다. 석 달 전 목 뒤 가벼운 찰과상에 세균이 들어가 몸 곳곳의 살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추베사씨는 '신이 내 딸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의료진은 "작년 '딸의 간질병을 고쳐달라'는 부탁은 들어줄 수 없었지만 이번 패혈증만큼은 확실하게 고쳐주겠다"고 약속했고, 썩은 살을 긁어내고 소독한 뒤 항생제를 처방해주자 상처 부위가 호전됐다.

의료진이 3박4일간 돌본 환자는 850여명. 이 중 줄루씨나 추베사씨의 딸처럼 간단한 처치만으로 병을 치료한 환자가 80여명에 달한다. 의료진은 치료 외에도 보건소를 찾은 환자 전원에게 구충제를 먹이고,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에게 칫솔과 치약을 나눠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