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낮추고 사방을 열었다… 배려·소통의 공간이 열렸다

"공공성이나 환경과의 조화는 요즘 건축계에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건물이 많아요. 그래서 이 건물은 주변 건물의 통풍이나 채광, 조망을 방해하지 않도록 지었습니다."

지난해 말 완공된 서울 숭실대 학생회관은 '겸손한' 건물이다. 운동장의 스탠드 자리에 들어서면서도 법학관, 과학관 등 운동장 주변의 다른 건물들을 가려버리지 않았다. 건물을 두 부분으로 나눠 ㄱ자로 만들었다. 서울 인사동의 '쌈지길'을 설계한 연세대 건축공학과 최문규(51·사진) 교수의 작품이다. 최근 숭실대에서 만난 최 교수는 "둘로 나뉜 부분을 합쳐 하나로 만들었다면 건물이 높아져서 주변 건물들을 가로막았을 것"이라며 "건축은 주변에 대한 배려와 존중 없이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최 교수의 이 작품은 지난달 말 발표된 서울시건축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도시적 맥락에서 사방으로 열린 캠퍼스를 보여줬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 한 건축상 공모에선 예선 탈락했다"고 한다. 최 교수가 강조한 '겸손함' 때문이었다. "예선에서는 사진으로 심사하는데 '사진으로는 어디가 건물인지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낙방했어요."

대지는 건물을 만들기엔 불리한 조건이었다. 법학관, 과학관 등의 건물과 중앙 광장으로부터 12m 정도 움푹 꺼진 곳에 있는 운동장의 스탠드 자리였기 때문이다. 운동장을 끌어안는 모양으로 들어선 학생회관은 자연스럽게 스탠드의 역할도 겸하게 됐다. 동아리방이 들어간 ㄱ자의 한쪽 변 부분 옥상에 나무로 깔아놓은 데크가 스탠드가 됐다. 식당, 행정시설, 매점 등이 있는 다른 변 부분도 운동장 쪽에 유리를 많이 써서 시야를 열었다. 또 "축대에 바짝 붙여 지을 경우 축대와 접하는 쪽은 자연 채광, 환기가 전혀 안 되기 때문에, 축대로부터 약간씩 틈을 뒀다"고 했다.

건물은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다. 최 교수는 "내부의 공간들이 저마다 다른 넓이와 높이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한 층이 하나의 평면으로 된 일반적인 건물로 만들기가 어려웠다"며 "같은 층에서 학생식당과 스낵코너가 높이 차이를 두고 경사로로 이어지는 등 입체적으로 구성했다"고 했다.

외부에서 5층 출입구로 들어서면 나선형을 그리는 경사로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건물 내부에 나선형 경사로가 이어지는 최 교수의 대표작 쌈지길을 연상시키는 공간 구성이다. 하지만 그는 "학생회관은 쌈지길과는 다른 건물"이라며 "쌈지길이 인사동길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었다면 학생회관은 길이 건물을 통과하게 한 프로젝트"라고 했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엄격하지 않은 건물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학생회관을 통과해 여러 방향으로 자유롭게 다니도록 했어요. 건물 전체에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가 25개쯤 됩니다."

곳곳에 외부로 개방된 테라스와 데크를 만든 것도 '내·외부가 함께 존재하는' 건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학생들이 식사도 하고 바자회처럼 예전 같았으면 건물 밖에서 했을 여러 행사도 하는 공간으로 자유롭게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건물 내 학생식당 기둥엔 "점심시간에는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최 교수는 "널찍하고 빛이 잘 들어오는 식당을 학생들이 도서관처럼 활용하기 때문에 점심시간에는 식사하는 학생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얘기"라고 했다. "건축가인 나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학생들이 그만큼 적극적으로 공간을 활용한다는 건 고마운 일"이라고도 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에도 학생들은 이곳에서 책을 보고 친구들과 함께 과제를 준비했다. 경영학과 1학년 도여울(19)양은 "도서관처럼 딱딱하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조별 과제를 할 때 자주 이용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