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씨간장 50만원… 최고급 식품관은 불황 몰라

27일 오후 서울 청담동 SSG 푸드마켓은 평일인데도 계산대 5곳 중 빈 곳이 없었다.

치즈 코너에는 전 세계 200여 가지 치즈가 가득했고, 간장·된장을 파는 장류 코너에는 제조자 이름과 제품 내력이 적힌 설명서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간장은 한 병에 1만5000원인 3년산 간장부터 300mL에 50만원 하는 '100년 씨간장'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신세계는 "SSG 청담점은 지하철 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져 있어 교통이 불편한 편이지만 지난 7월 개장 이후 고객이 하루 평균 1500~2000명씩 찾아온다"고 밝혔다.

SSG 오픈을 계기로 가격이 비싸고 품질이 좋은 프리미엄 푸드 매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이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비싸게 물건을 팔아 이익을 취하는 과정에서 소비 양극화가 심해진다" "먹거리 하나에 몇 십만원씩 하는 걸 보니 박탈감마저 느껴진다"는 등 비난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백화점 업계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프리미엄 푸드 매장을 강화하는 중이다.

갤러리아도 기존 식품관을 개보수해 업그레이드한 '고메이(Gourmet) 494'를 다음 달 5일 오픈하며 프리미엄 푸드 시장에 도전장을 낸다. 갤러리아 명품관 주소인 '압구정동 494번지'에서 이름을 따 온 이곳은 이탈리아·영국·프랑스 등의 고급 유기농 식품 브랜드 170여개 품목을 해외에서 직수입한다. 마켓과 음식점 기능을 합쳐 식재료를 구입한 동시에 먹을 수 있도록 한 게 가장 큰 특징. 유제식 상무(명품관 점장)는 "강남 지역 '맛 지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며, "유통업체 식품관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불황 속에서도 백화점이 프리미엄 푸드 매장을 앞다퉈 여는 까닭은 고객들이 가격은 다소 비싸도 타사와 차별화되고 질적으로 우수한 푸드 매장에 갈수록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

올해 분당점 등의 식품 매장을 대폭 강화한 롯데백화점은 "매출 상위 20% 고객을 기준으로, 백화점 식품관을 이용하는 고객은 그렇지 않은 고객에 비해 재방문 빈도가 2배나 높고 체류 시간은 2시간 20분으로 미이용 고객보다 20분 길며, 1인당 구매 금액도 2.3배"라고 말했다. 일단 지하층 식품관에 들러 먹거리를 사면, 지상 매장으로까지 구매가 이어지는 일명 '분수 효과'가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백화점 업계 식품 매장 매출은 불황에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이헌상 부장은 "명품 매출이 백화점의 '격'과 '힘'을 좌우하긴 하지만, 영업에 더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 식품 매출이라서 업계에선 수퍼마켓 고객을 '수퍼(su per) 고객'이라고들 한다"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본점에 업계 최대 규모 수입 치즈 전문숍을 오픈하고, 세계적 호텔 체인인 '더 페닌슐라 호텔'에서 운영하는 프리미엄 식품을 들여오는 등 프리미엄 푸드 부문을 대폭 강화했다.

소비자들은 왜 불경기에도 굳이 가격이 비싼 프리미엄 푸드 매장을 찾는 걸까? 27일 SSG를 찾은 김모(45)씨는 "다른 어느 곳보다 소스, 치즈, 애견용품 등이 다양한 게 매력"이라며, "장을 볼 땐 집 앞 대형마트엘 가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기분전환 삼아 고급 식품이나 수입 식품을 사러 온다"고 말했다.

웰빙에 대한 관심이 커진 점, 먹거리는 다소 비싸도 다른 사치품보다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은 점도 프리미엄 푸드의 인기 상승 비결이다.

프리미엄 푸드의 인기가 높아지자, 최근엔 식품업체들도 프리미엄 제품을 경쟁적으로 생산하는 추세다. 한국야쿠르트는 한병(930mL) 가격이 8500원으로 일반 우유보다 3배쯤 비싼 프리미엄 우유 '내추럴 플랜'을, SPC는 고급 기능성 우유 '밀크 플러스'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동서식품도 프리미엄 원두 스틱 커피 '카누'를 출시해 월 7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값과 품질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며, "'프리미엄'을 내세워 가격을 지나치게 높임으로써 물가상승을 유도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