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침술, 미국·영국 등에서 전공과목 개설될 만큼 유명"

"말은 사람과 혈이 유사해 사람을 기준으로 만든 혈 자리를 활용해 침을 놓을 수 있지요."

지난달 27일 경기도 과천 서울경마공원. 김영균(55) 수의사가 말 등에 침을 조심스럽게 놓고 있었다. 사람 손가락 두세 마디쯤 깊이로 침이 들어가는데도 500㎏에 육박하는 말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김씨는 "시속 65㎞로 질주하는 경주마는 고강도 운동으로 체력 저하는 물론 뼈·인대에 이상이 생기기 쉽다"며 "선수들이 경기 후 침술 치료로 체력을 회복하는 것처럼 말도 침술을 활용해 근육을 풀어주고 기의 흐름을 뚫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말 침술은 부상 재발 위험에서 벗어나 완치를 목표로 하는 치료법"이라고 했다.

김씨는 말 전문 치료사, 마의(馬醫)다. '경마계의 허준'으로 통한다. 서울경마공원 마방에서 말이 조금만 이상하면 김씨를 찾는다. 마사회 최용호 차장은 "경주마의 최대 적인 '말 산통(배앓이)'도 침술로 치료하면서 경마계를 놀라게 했다"고 했다. '말 산통'은 1993년 이전에는 제대로 된 치료법이 없어서 사망률이 높았다. 김씨는 일반적인 침술, 약을 투여하는 약침술, 전기를 통하는 전기침술을 활용해 말을 치료한다.

마주협회 관계자는 "수천만원에서부터 많게는 3억원이 넘는 경주마도 그의 손을 거치면서 재활에 성공했다"며 "김씨가 치료한 말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김씨가 2010년 부산경마공원 상반기 최우수 국산마로 선정됐던 '남도제압'과 통산 12승을 올린 '기라성'을 치료해 우승시키며 경마계의 명의(名醫)로 떠올랐다"고 했다.

"경주마는 프로 선수와 같아요. 부상을 입으면 경주에 나서도록 빠른 조치를 해야 하거든요."

김씨는 중학교 시절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목장에 놀러 갔다가 가스가 찬 홀스타인 젖소를 감쪽같이 치료하는 수의사를 보고 진로를 결정했다. 1984년 경북대를 졸업하고 한국마사회에 입사했고, 2년 뒤 한방 수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도쿄의 경주마 트레이닝센터인 '미호 트레이닝센터'로 연수를 떠났다. 4개월 동안 이콰인 침술(equine acupuncture·말 침술)을 배우고 돌아온 뒤에는 경마공원에 말 수술실을 처음 열기도 했다. 김씨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우리 수의사의 능력으로 대회를 치를 수가 없었다"며 "정부가 짧은 시일 내 말 전문 수의사 양성을 위해 일본 연수를 주선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후 26년 동안 꾸준히 임상 실험과 연구를 통해 말침술을 발전시켰다.

김씨는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말 침술이 단일 전공과목으로 개설될 정도로 유명한 치료법"이라며 "말 관련 산업이 번창하는 만큼 내가 할 일도 점점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