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잠수함, 지구 74바퀴 작전거리에서 무사고

1992년 10월 14일 독일 북쪽 항구도시 킬(Kiel)의 한 조선소. 독일에서 건조된 잠수함에 태극기와 해군기가 게양되자 한국 해군 50여명이 일제히 경례했다. 우리 해군 첫 잠수함 '장보고함'(1200t급) 인수식이 독일 현지에서 열린 것이다. 당시 잠수함 전대장 요원으로 유학 중이던 해군 대령은 '1·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독일 잠수함 U보트보다 더 강한 잠수함 부대를 건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1995년 잠수함 전단 창설과 동시에 초대 전단장(준장)을 맡은 김혁수(해사 25기) 예비역 제독이었다. 김 제독은 4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 잠수함 부대가 20년 무사고 기록을 달성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작전거리로 따지면 160만 마일(257만㎞)로 지구를 74바퀴 돌 수 있는 거리"라며 "미국·중국·러시아 등 잠수함 주요 운용국들이 승조원 수십~100명 이상 사망하는 대형 인명사고를 겪은 것과 비교하면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김 제독은 "장보고함은 한 번 타 보지도 못하고 부서질 뻔했다"고 했다. 인수식 직후 수송선에 실려 40여일간 한국으로 이송되는 도중 수송선에 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수송선 마스트(돛대)가 부러질 정도로 위력이 강했다고 한다. 장보고함 이후 우리 해군이 운용 중인 잠수함 10여척은 모두 국내에서 제작됐다.

그는 "잠수함 승조원을 양성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수상함(水上艦) 우수 요원들이 직무 환경이 힘들고 위험한 잠수함 승조원이 되길 꺼렸던 탓이다. 김 제독은 "장병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대한민국 잠수함 역사를 함께 써 나가자'고 설득했다"고 했다.

우리 잠수함 부대는 창설 이후 수많은 연합·해외 훈련에 참가해 성과를 거뒀다. 1994년 서해상에서 실시한 한미 대잠훈련 모의 전투에서 해저 밑바닥에 은폐하고 있던 이천함은 우리 잠수함을 찾아 헤매던 미군 대잠(對潛) 전대의 기함(旗艦)을 침몰시켰다. 김 제독은 "당시 기함에 타고 있던 미 전대장은 피격 신호를 받자 모자를 집어던지며 화를 냈다"고 했다.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1997년 홍콩 근해에서 미국·영국·호주·한국이 동아시아 훈련을 벌였고, 우리 잠수함 박위함이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나중 박위함 참가 사실을 확인한 중국이 주한 중국대사를 통해 우리 외교부 장관에게 항의했다고 한다. 항의 소식은 국방장관과 해군참모총장을 거쳐 김 제독 귀에도 들어갔다. 김 제독은 당시 해군총장에게 "총장님! 정말 기분 좋습니다. 잠수함 외에 대한민국 어느 전력이 중국을 신경 쓰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북한은 70여척의 잠수함을 보유했고 잠수함 운용도 30년이나 앞선다"며 "중국과 일본, 러시아보다 해군력이 절대적으로 열세인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최상의 전력이 잠수함"이라고 강조했다.

해군은 5일 진해군항 잠수함 부대에서 최윤희 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잠수함 안전운용 20주년 기념식'을 연다. 김 제독 등 역대 잠수함 전단장과 잠수함 관계자들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잠수함 연맹'창립식을 가질 예정이다. 64세인 김 제독은 "연맹 네트워크를 만들어 북한과 전투 등 유사시 나를 포함해 모든 회원이 즉각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