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여성의 몸과 생명을 다시 생각하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어머니'일 것이다. 사방에 찰랑이는 가을 햇살 속에 문득 그리움처럼 떠올려보는 모습도 어머니이다. 지난 추석에 몇 시간이나 차를 달려가 만난 어머니의 주름살, 혹은 말 없는 산소 앞에 엎드려 깊게 부른 그 이름을 사람들은 품고 산다.

얼마 전 제주에서 문학 특강을 마치고 밤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으로 나왔을 때의 일이었다. 마침 태풍 예고가 내려졌기 때문에 공항은 무척 어수선했다. 하필 바로 앞 비행기가 결항되어 발이 묶인 승객들이 항공사 직원들의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거센 항의를 하고 있었다. 정황은 이해되지만 최신 과학 시스템이나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태도로는 매우 원시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한 여직원이 다음 비행기의 수속을 돕기 위해 나왔다. 화가 난 승객 중 몇 사람이 그녀에게 큰 소리로 삿대질을 했다. 그녀는 만삭의 임신부(姙娠婦)였다. 누군가 뒤에서 만류하자 "임신부면 다야!" 하고 더 큰 목소리로 날뛰었다. 마치 공항에 출몰한 두려운 괴물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올라탄 밤 비행기 안에서 펼쳐든 신문에는 입에 담기도 두려운 성폭력 기사가 크게 실려 있었다. 아동 포르노와 성매매에 대한 기사도 심각한 진단과 함께 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여성'과 '여성의 몸'을 대하는 수준이 바로 이런 지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프게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한국의 인구는 나날이 줄어 2050년경에는 지금보다 611만 명이 감소하여 국가 활력이 두려울 만큼 쇠퇴할 것이라고 한다. 당장 현재 직장에서 일하는 워킹 맘들이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문제도 절박한 수준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미흡하고 거칠기만 한 현실에서 누가 마음 편히 임신을 하고 힘든 육아를 치러낼 수 있을까.

여성의 임신은 그 자체로 존귀함은 말할 것도 없고, 미래의 국민을 낳고 기르는 소임을 맡았다는 점에서도 소중하기 이를 데 없다. 어머니의 '젖'이 미래 국민을 키우는 식량이라는 인식은 별로 하고 있지 않다.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그 사회의 문명 수준이다.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그 문화를 꽃피우는 본질이다.

미국의 한 학자는 여성을 모든 면에서 열등한 존재로 차별하면서도 유독 모성애(母性愛)만은 신성시하는 것 또한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만든 굴레라는 학설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당위성에 대해 토론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인간이 한 생명을 잉태하는 행위는 진실로 숭고하다. 아울러 인간의 사랑 가운데 어머니라는 이름이 쏟아내는 사랑이 단연 크다는 것 또한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것이 전통과 관습에서 오는 것이든 하늘이 부여한 본성적인 것이든 말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원형인 여성의 '몸'에 대해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현실을 우리는 도처에서 목격하고 있다. 범람하는 성범죄를 보며 경악과 함께 그 대책이 절박하게 시급함을 느낀다. 여성을 주로 성적(性的)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 기준으로 이해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문제들을 그냥 성(性)과 관련된 폭력 범죄 정도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남성의 성(性)이 지극히 충동적이고 본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랜 고정관념이요, 잘못된 편견이라는 사실은 이미 학자들이 규명한 지 오래다. 우선 생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가치 정립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동시에 본능이나 충동은 지적이고 합리적인 교육으로 얼마든지 이성적(理性的)인 제어력을 갖출 수 있으며, 인간으로서 절제를 지니게 할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남성은 진정한 남성,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이름인 어머니가 되는 잉태(孕胎)의 소임을 맡고 있는 여성의 몸, 죽음의 힘을 뚫고 온몸을 폭파시키고 생명을 지상에 떨어뜨리는 한 인간의 몸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이가 탄생의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을 한 위대한 작가는 이렇게 묘사했다. "미켈란젤로가 돌팔이고, 뉴턴이 풋내기였다."

사회와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전쟁만이 아니다. 스스로 겁도 없이 저지르는 모성(母性)과 여성성(女性性)에 대한 거침없는 모독,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가장 참혹한 방법으로 파괴하는 성범죄를 탁상 정책의 대상이나 신문 사회면의 사건 정도로 생각하고 말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교육과 가치 철학 없이는 우리가 문화국이요, 선진국이라고 들이대는 경제 수치나 스포츠 실적 등의 통계는 실로 무참한 껍데기이다.